고적문화답사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및 3층석탑

지슬의 세계 2018. 10. 19. 14:59

동문들과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몇 번을 갔어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탄금대를 답사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언제부터였는지 답사는 혼자 하는 것이 편했다. 다른 사람들과 답사하다 보면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하면 더 없이 좋기는 하지만 아내가 피치 못해 동행하지 못할 때는 언제나 혼자 답사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혼자 길을 달리며 혹여 이정표라도 볼 수 있으려나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주위를 살피고 가던 중 대로 한쪽 편에 사찰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찰은 무엇 때문에 대로 한 쪽에 자리 잡고 있을까? 생각하며 차를 멈췄다. 그제야 들어오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보물 제512. 원래 이 불상은 단호사 노천에 방치되었던 것이었지만, 대웅전을 새롭게 건립한 후 이안하여 봉안하였다. 단호사에 대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인근 대원사(大圓寺)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98호 충주 철조여래좌상(忠州鐵造如來坐像)과 약간의 크기 차이만 있을 뿐, 형식이나 양식, 조각기법, 그리고 착의(着衣) 등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어 동일한 작가 또는 공방(工房)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500년 된 소나무라고 하는데 형상이 마치 용틀임하는 모양새다. 소나무 하나만으로도 그 역사를 짐작케 한다.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머리에 나발(螺髮)이 촘촘하며, 육계(肉髻)에는 정상과 중앙에 커다란 반달모양의 계주(髻珠)가 있으나, 그 경계가 확실치는 않다. 얼굴은 긴 타원형이며, 좁은 이마의 중앙에는 작은 구슬모양의 백호(白毫)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이목구비는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다. , 물결치듯 내려보는 버들잎 모양의 눈매, 돌출한 광대뼈, 눈썹에서 날카롭게 이어진 삼각형의 콧날, 앙다문 입술과 움푹 파낸 입 주변, 힘을 주어 당긴 턱 등에서 풍기는 인상은 과장되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귓불을 뚫은 양 귀는 목 부분까지 길게 늘어졌으며, 링을 감은 듯 목에는 삼도가 굵게 돌려져 있다.

철불을 보려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대웅전 뒷편에서 사람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누구하나 내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


법당 문을 조심스레 밀어 보았지만 굳게 잠겨져 있어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창살 안으로 촟점을 맞추어 철불을 담아 보려 했지만 그 것마져 여의치 않았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 현존 높이는 2.14m이며, 본래는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전(藥師殿) 앞에 세워진 이 탑은 하층 기단부는 현재 시멘트로 덮여 있으나 3층까지의 탑신과 옥개석은 완전하며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까지 잘 남아 있다.

단층기단의 면석은 높이 43인데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표현되었고, 갑석(甲石)은 높이 16로 윗면에 1단의 탑신 괴임이 조각되어 초층 탑신을 받치도록 되어 있다. 초층 탑신은 40의 높이에 양 우주를 나타냈으나 서북쪽의 일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약간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초층 옥개석은 높이 25.5로 하단부에 2단의 옥개받침과 상부에 1단의 탑신괴임이 조각되었고, 옥개석 하면에 낙수홈이 파여 있다. 2·3층의 탑신 및 옥개석은 초층과 유사하며 노반은 방형으로 높이가 6.5로서 윗부분 중앙에 찰주공(擦柱孔)이 만들어져 있다.


이 탑은 부분적인 파손은 있으나 우주와 탱주의 모각 수법과 옥개석의 층급받침, 옥개석 낙수면의 원만함과 낙수홈 등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고적조사보고서(朝鮮古蹟調査報告書)읍남약사전 삼층석탑 신라(邑南藥師殿三層石塔新羅)’라는 기록이 있어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최근 이루어진 정밀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원래 5층석탑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탑을 3층으로 보고 3층 옥개 위에는 노반(露盤)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것은 노반이 아니라 3층 옥개에서 4층 탑신면의 우주가 각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단면석에 돋을새김을 한 우주와 탱주의 표현 수법이 일정하지 않지만, 각층 탑신에는 우주의 표현이 정연하다. 탑의 체감비율로 볼 때 상당히 경쾌한 탑신부를 형성했으리라 짐작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