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중세사회 해체기 조선의 사회변동

지슬의 세계 2011. 7. 7. 15:16

중세사회 해체기 조선의 사회변동

통일신라시대 이후 유지외고 있던 중세 시대인 조선시대에 와서는 신분제도는 양천제로 토지제도는 지주전호제로 유지되고 있었다.

중세의 봉건체제는 16세기에서 17세기 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전시에 노비문서가 불타버림으로서 노비 층에 대한 파악이 어려워지고 전란으로 인한 재정부족을 충당하기위한 납속책의 영향, 전공을 세운 상민과 노비에 대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생기면서 신분체제는 급격이 흔들린다. 농촌사회는 조선후기 이앙법의 도입과 인삼. 담배 등의 재배가 늘면서 상업적 농업의 발달 등을 가져오고 노비나 상민들이 지주가 될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수공업과 상업. 광업의 발전에 따라 양반지주와 전호농민들을 바탕으로 한 중세 조선사회의 기본 틀이 해체되어간다.

18세기 들어서면서 실학자들은 균전제 여전제 정전제 등의 토지개혁을 주장하였고 정치제도에서도 농업경영에 뛰어난 농민을 지방이나 중앙의 관리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기존 토지제도 및 신분차별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조 사후 세도정치는 사회 변화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제도는 개혁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의척가문에 의한 권력집중으로 삼정의 문란과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의식수준도 향상되면서 농민항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인내천의 만민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학교가 생겨나고 1894년 농민전쟁과 뒤이은 갑오개혁으로 신분제의 철폐 및 과거제 폐지로 이어져 중세사회의 해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