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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잃은 장승

지슬의 세계 2013. 5. 4. 04:19

할 일 잃은 장승

 

지슬 박경남

 

더는 내게 길을 묻는 이도

지켜줘야 할 이도

소원을 비는 이도 없다.

메마르고 거친 손 비벼가며

머리 조아리던 노파는

어느새 벗이 되었고

 

내게 분칠해 주던 손길

끊어진 지 얼마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툭 튀어나온 눈알도

시력을 잃어버렸고

대장군인지 여장군인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었구나.

 

허망한 세월을 탓할까?

문명이 변하였음을 탓할까?

이제는 할 일 없어

지나가는 이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호기심 많은 아이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언젠간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두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