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란정

[스크랩] 운수(運數) 좋은 날 [수필, 삶의 이야기]

지슬의 세계 2015. 1. 30. 22:29

 

운수(運數) 좋은 날

 

  운전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운수(運輸)업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운수(運數)업이라고 한다. 운이 좋으면 돈벌이가 잘돼서 하는 이야기이다.

요금을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잔돈을 안 받아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밤늦게 고생한다며 요금에 몇 배를 더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날은 진짜로 운수(運數) 좋은 날이다.

  그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 이였다. 요금이 오천 원도 안 나왔는데 만 원을 주며 고생하시니 집에 들어갈 때 해장국이나 잡수시고 들어가시라며 벌써 몇 사람이 잔돈을 안 받고 내리셨다. 그럴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사실 운전기사들은 단순하다. 단돈 몇백 원에도 기분이 좌우되는 게 택시기사의 현주소일 만큼 상황이 어렵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한참 기분 좋게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허룩하게 옷을 입은 사람이 타더니 용인에 있는 000 공원묘지를 가자고 한다. 속으로는 “일 잘되고 있는데 이 무슨 재 뿌리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은 않고 내비게이션을 찍어 놓고 차를 몰고 있었다. 한참을 가는데 이 손님이 가다가 편의점 있으면 잠깐 세워달라면서 소주를 사야겠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 차를 세웠더니 검은 비닐봉지에 소주를 몇 병 샀는지 싸서 나오면서 드링크제를 사가지고 와서는 피로하실 테니 잡수시라면서 내게 내민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다 보니 사실 손님이 내미는 드링크제는 기사들이 받아 놓고도 잘 안 먹는다.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면서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고 손님은 자기가 가진 돈의 전부라며 주머니를 털어서 내게 건네주는 돈을 15만 원이 넘었다 요금으로 치면 네 배도 더 되는 돈을 주면서 “오늘 이후로 나에겐 필요 없으니 아저씨 다 가지세요.” 한다.

 

  늦은 시간에 공원묘지에 오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주니 별다른 생각 없이 돈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면서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손님이 타기 전에 손에 들렸던 검은 봉지에 둘둘 말려 있는 것이 이상하게 머리를 스친다. “아차!” 하는 생각으로 나는 급하게 차를 돌렸다. 다시 그 공원묘지로 차를 몰고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스마트 폰의 손전등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가까스로 찾을 수 있었고 무덤 앞에 놓여 있는 소주병과 농약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며 “아저씨 가시지 않고 왜 다시 올라왔느냐”고 묻는다. 가다가 생각해 보니 젊은 사람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올라왔노라고 말하며 무슨 일이 있기에 이 밤에 여기에 올라왔으며 소주병과 농약병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 사람 하는 이야긴즉슨 하도 되는 일 없고 먹고 살기는 힘들고 해서 어머니 무덤 앞에서 실컷 울다가 어머니가 계시는 저승에나 가려고 한다고 실토한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래 얼마나 못났으면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 무덤 앞에서 자살하려고 이렇게 올라왔느냐고 호통을 치고 눈에 보이는 농약병을 산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러면서 정히 죽으려면 다른 데 가서 죽지 왜 하필 어머니 무덤이냐며 야단 반 타이름 반으로 구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저씨가 뭔데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고 대들기는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하게 이야기가 통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이야기했는지 여명이 밝을 즈음에 그 친구를 설득하여 다시 데리고 내려오면서 사람이 죽을 용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데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살아 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러면서 먼저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 그 친구는 아저씨 일도 못 하셨는데 손해 보시면 안 되잖느냐고 하면서 한사코 안 받으려 했지만 그래도 젊은이의 생명을 구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와 반씩 나누어 갖자고 하면서 내게 8만 원을 내민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면서 돈을 돌려주니 자기는 집에 가면 돈이 있으니 아저씨 받으시라고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면서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저씨 말씀대로 이젠 이를 악물고 힘껏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어느덧 수원으로 돌아와 그 친구 집 앞에 내려주면서 나는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혹시 힘들고 어려우면 나한테 연락해서 형님처럼 삼촌처럼 의논하고 이야기하면서 용기 내어 살라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사람의 예감은 참 희한한 것이다. 만약, 운수(運數)가 좋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끔찍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한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 때 살인도 하고 자살도 한다는데 그때 아무도 없었으면 그 친구는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 오늘은 돈보다 더 귀한 죽을 사람 살렸으니 돈은 못 벌었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운수(運數) 좋은 날이다.

출처 : 석란정
글쓴이 : 지슬/박경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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