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란정
[스크랩] 빨간 우체통
지슬의 세계
2015. 1. 31. 01:58
빨간 우체통
지슬 박경남
언제 발길이 끊어진 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거기 서 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퀭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혹시나 가방 속에서 무언가
꺼내기를 목이 빠지게 바라고 있다.
정보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지 못해
밀리고 밀려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모습은 언제나 홍조를 띠고 있다.
옛날이 그립다.
수줍은 듯 다가와
내 입에 꽃분홍 사연 고이 담아주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
긴 머리 찰랑거리며 뒤돌아보는 소녀의 모습에
염려 말라는 기쁜 웃음을 지어주었지
찾아오는 이도
소식을 전해줘야 할 이도 없는
삭막한 도심 속 사거리에
서 있으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공허이다
빈속에
매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온종일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혹여라도 귀한 소식
전해 줄 사연이라도 있을까?
나는 아날로그 시대에 마지막 남은 증인이 되고 있다.
출처 : 석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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