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의 두 번째. -엄청난 미꾸라지-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의 두 번째. -엄청난 미꾸라지-
우리의 신혼살림은 아주 외딴 곳에서 시작하였다.
수원에서 맨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에서도 맨 끝에 내 집이 있었다. 그때 나는 화훼 농사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었고 부업이라고 할까? 동네 사람이 주변에 있는 축산 시험장에 취업을 시켜주었다. 하는 일이란 게 소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축사에 쌓인 소똥을 치우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오전에 모든 일이 다 끝났지만, 5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야간 숙직은 나에게뿐만 아니라 혼자 있는 아내에게도 더없는 고통이었다.
외딴곳에 집이 있는 관계로 아내 혼자 밤을 지새우기에는 너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장모님이 오셔서 함께 생활했지만 그래도 여자 둘이서만 있는 집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야간 숙직 때는 시험장 높은 언덕에 올라가 보면 우리 집 지붕이 보이기에 시간 나는 대로 밖에 나가 집을 바라보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초봄, 소를 많이 키우던 동네인지라 사람들은 논에다 소똥을 거름으로 뿌려 놓고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쟁기질을 다해 놓은 상태였다.
그날 낮엔 봄비치고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엄청난 비가 내렸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은 나는 숙직을 하려고 집을 나서서 축사를 한 바퀴 돌아보고 집이 못 미더워서 언덕에 올라 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에 내렸던 비와는 사뭇 다르게 보름달이 얼마나 청청하던지 사방천지가 푸르스름하게 보일 전도였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달밤에 집 쪽을 바라보고 내려오다 보니 어느 논에선가 바람이 불어 잔물결이 치는 것 같이 윤슬이 노닐고 있었다. 이상하기도 했다. 왜 바람 한 점 없는데 유독 쟁기질해 놓은 논바닥에서만 저렇게 잔물결이 치고 있는 걸까?
이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가 TV를 보다가 다시 한 번 집을 바라보러 언덕에 올라갔다. 달은 밝아 훤해 조금 안심은 되었지만 아까 그 논엔 아직도 윤슬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내일 아침에 퇴근하면서 한번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을 청했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 일찌감치 자전거를 타고 밤에 보았던 논엘 가 보았더니 세상에나 이게 웬일인가? 쟁기질한 고랑 사이사이로 물이 남아 있는 곳에 미꾸라지들이 바글대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마치 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려고 그물에 고기를 잡아 떠올린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회사로 돌아가 오전 일을 마무리하고 동료들에게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자고 했더니 어디로 가느냐고 반문을 했다. 내가 가자는 대로 가면 된다고 했고 사람들에게 준비를 시키면서 경운기에 소 여물 담는 커다란 통을 두 개를 가지고 가자고 했더니 고기가 얼마나 많기에 저렇게 난리를 치느냐며 수군거렸다. 나는 무조건 내가 하자는 대로하자면서 동료들을 아침에 봤던 논으로 경운기에 태우고 갔다. 도착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고는 입이 벌어졌다. 물을 뺀다거나 다른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그저 손잡이 달린 바가지로 통에다 고기를 퍼 담기만 하면 되었다. 정말 정신없이 퍼 담았다. 어느새 커다란 통 두 개에 미꾸라지가 가득하게 되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 집에 가서 통을 가져다 고기를 잡아가기도 했다. 우리는 두 통에 가득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회사로 돌아와 시험장 안에 있는 연못만 한 우물에 풀어 놓으니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항상 직원들에게 관심이 많으셨던 장장님이 차를 타고 지나가시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것을 보시더니 무엇 하냐고 물으셨다. 엄청나게 많은 미꾸라지를 보시고는 이런 귀한 것을 어디서 잡았느냐며 퇴근 시간 맞춰서 들어올 테니 추어탕 맛있게 끓여 먹자시며, 막걸리는 장장님이 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서로 흥분해 하면서 어떻게 미꾸라지들이 그렇게 많이 그곳으로 모일 수 있을까? 를 생각해 봤다. 전날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미꾸라지들이 소똥 냄새를 맡고 가까이 흐르는 황구지천이란 곳에서 거슬러 올라온 것이라고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미꾸라지가 논에 그렇게 많이 모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날 저녁때는 장장님을 모시고 시험장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이 모여 미꾸라지 매운탕으로 거나하게 막걸리와 더불어 파티를 하였다.
이것이 나만이 알고 있는, 아니 그날 거기서 같이 미꾸라지를 잡았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