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운전대 붙잡고 울던 날
운전대 붙잡고 울던 날
지슬 박경남
IMF는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다른 사람의 간섭받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성격에 그래도 내 사업이라고 일하던 사업이
국제 금융 위기라는 괴물에 휩쓸려 나 자신도 어둠의 긴 터널을 비켜 가지는 못했다.
사무실의 반을 접에 쌀가게도 해 보았지만 장사하는 것이 처음 이였던 우리는
그것마저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운전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아내와 의논을 했지만,
아내는 결사반대였다. 그래도 사업을 하면서는 사장님 사모님 소리를 들었었는데
택시 기사 마누라라는 소릴 죽어도 듣기 싫다고 했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느냐? 고 아내를 달래도 보고, 협상과 읔 박, 애걸 끝에
딱 두 달간만이라는 전제하에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다.
수원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으니 웬만한 골목길 정도는 훤하게 뚫고 있는지라
처자식 먹여 살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길과 손님이 가자는 길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현찰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돈 일이백 원에 고성이 오가고 눈살 찌푸리는 일이 잦아지자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손님들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하니, 택시는 타는 사람들만 타는 관계로
길을 빨리 익힐 수가 있었고, 시비도 생기지 않았다.
2000년도 11월이었다. 사람들은 IMF가 끝났다고 다시금 흥청거리기 시작했고
택시 영업 수입도 짭짤했었다.
삼 일째 되는 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술 취한 승객을 마다치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린다 해도, 그들도 집에 가면 하늘 같은 지아비에
존경받는 아버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젊은이가 만취된 상태로 차에 올랐다. 목적지를 물으니 얼마나 취했는지혀가 꼬부라져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물으니 이 젊은이 하는 말이 자기는 죽어도 리바이벌은 못 한다고 빨리 가란다.
그 당시 유머가 리바이벌은 못 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정중히 목적지를 잘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한 번 말해 달라고 하니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막무가내였다.
한참을 그렇게 시비를 하면서도 창문을 여닫고 하더니 술이 조금 깨었는지 하는 말이
자기는 23살인고 여태껏 리바이벌해본 적이 없는데 다시 한 번 얘기해 준다며
목적지를 이야기하는데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손님에게 내가 택시 영업한 지 3일밖에 안 돼서 그러니 길을 안내해 달라고 했더니 또 욕설을 퍼부었다.
요새 택시 기사 놈들은 간덩이가 부어서 길도 모르면서 운전을 한다는 등,
경험도 없으니 어떨 도리가 없어서 난감해하는데 이 친구 하는 말이 정신 똑바로 차려서 배우란다.
하면서 여기서 우회전하고 저기서 좌회전, 또 저기서 좌회전하고 저쪽에 가서 좌회전하란다.
도착해서 보니 타던 곳 반대 차선에 차가 멈춰 섰다.
이 젊은이 어느 정도 술이 깨었는지 요금에 두 배나 되는 요금을 내면서
열심히 살아라, 힘들다고 꾀부리면 굶어 죽는다고 하며 일장 훈시를 하고
비틀거리며 내리더니 문도 안 닫고 가 버린다.
순간, 욱하는 것이 치밀어 올랐다.
차에서 내리니 마침 그곳이 신도시 건축 중이라 사방에 건축자재들이 널려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손에는 벽들이 들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파노라마처럼 생각이 스쳐 돌아갔다. 쇠창살, 울고 계시는 어머니, 아내와 어린 삼 남매.
아차,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울분 섞인 마음에 벽돌을 아스팔트에 내던졌다.
바닥에 박살이나 산산이 부서지는 벽돌 조각과 파열음.
비틀거리며 가던 젊은이는 놀랐는지 뒤 한번 돌아보고는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너무 화가 나고 슬펐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장님 소리 들으며 큰돈은 아니지만
어려움 없이 잘 살았었는데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길에서 우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차 안에 들어가
운전대를 붙들고 통곡을 하였다.
이럴 줄 모르고 아내와 그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면서 이 일을 한다고 했던가?
이 나이가 되도록 다른 일하는 것을 대비도 못 하고 살았나?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보니
웬 어르신 한 분이 타시면서 자기가 급하니 남문으로 가자고 하신다.
일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일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영업 안 한다고 말씀드리니 그분이 자기가 급해서 그러니 부탁한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하는 수 없이 어르신을 모시고 가면서도 서러운 마음에 느껴졌다.
어르신이 조심스레 말씀하시는 게 내 사정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은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서러움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 어르신 요금보다 많은 돈을 주시면서
일 끝나고 들어가면서 해장국에 소주 한잔 하라시며 내리셨다.
그래 한쪽에서는 서럽게 하는 놈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웃게 하고 위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상 이런 일로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