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미친놈

지슬의 세계 2018. 2. 9. 13:11

 


미친놈

 

  택시 기사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가 여름 휴가철일 것이다.

  어디를 가도 손님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기에 택시 승차장 마다, 꼬리를 물고 대기하고 있어 지나가는 선량한 자가용 이용자나 버스 승객들에게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선의의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날도 어디다 차를 갖다 댈 데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수원역에 차를 대려 하니 이미 택시 승차장이 꼬리 물기의 도가 넘어서 있었다.

  그래도 갈 데가 없었기에 앞차 꽁무니에 바짝 대 놓고 얼른 앞차들이 빠지기를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잘해야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차에 오르며 서울 신정역을 갈 수 있느냐고 하였다. 속으로 손님도 없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얼른 미터기를 찍고 차를 빼려는데 요금을 얼마나 주어야 하느냐며 말을 건넸다.

  요즘은 디지털 미터기라서 요금흥정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때라 그냥 미터기에 나오는 요금만 지불하면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얼마나 나오느냐고 다시 말을 걸어 왔다. 우리는 주행거리가 몇 km인가를 알면 대충 얼마의 요금이 나오는 줄 알 수 있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보니 거의 40km 나오기에 0000원쯤 나올 것이라 이야기했더니 이 사람 대뜸 입에 담지 못할 상소리를 하며 “미쳤느냐 그런 거금을 들여서 서울까지 가는 놈이 어디 있느냐”며 요금을 깎아달라고 했다.

  미터기가 책정돼 있는데 요금을 깎아 달라는 것은 무리라고 말을 했더니 절반 가격의 요금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는 못 간다고 이야기했지만, 계속해서 육두문자가 이어졌다.

  나는 못 가니 그럼 그 요금에 갈 수 있는 차를 찾아보시라며 내리기를 요구했지만, 이 사람은 막무가내로 가자며 내리지도 않고 거칠 때로 거칠어진 어투로 상소리가 이어진다. 듣기에도 거북하고 손님도 없는데 짜증도 나고 해서 그렇게 자꾸 욕을 하시면 언어폭력으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했더니 어디 네 마음대로 한 번 해보라며 욕을 계속 해댔다.

 

  나도 참을 대로 참았고 이유 없이 손님 같지도 않은 사람에게 욕을 먹는다는 것도 화가 나서 가까운 파출소로 차를 몰았다. 파출소 앞에 차를 주차하니 경찰관 한 사람이 나오면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승객이 이유도 없이 욕을 해 대서 참다못해 언어폭력으로 고발하려고 왔다고 했더니 무슨 증명될만한 것이 있느냐고 한다.

  내 차엔 블랙박스가 있으니까 그것으로 증거로 삼으면 된다고 했더니 경찰관은 SD카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는 차에 가서 SD카드를 가지고 오는데도 그 사람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왜 안 가느냐며 욕을 해 댔다.

 

  경찰관은 블랙박스에 있는 내용을 확인해 보더니 내 차에 가서 그 사람을 불러오면서 당신을 택시기사가 언어폭력으로 고발했으니 어떻게 할 거냐며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하라고 말했더니 이 사람 조금 전과는 전혀 딴판으로 제가 언제 기사님께 욕을 했느냐면서 무슨 증거 있으시냐고 공손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찰관이 블랙박스에 녹화된 것을 다 확인했으니 얼른 기사님께 사과하라고 해도 자기가 직접 봐야겠으니 내용을 보여 달라고 했다. 경찰관은 화면을 보여주니 자기도 얼마나 심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피식 웃으며 아저씨 미안하게 됐으니 제가 돈으로 보상하겠다고 한다.

 

  나는 아직 화도 안 풀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맘에 안 들어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십만 원을 줄 거냐? 이십만 원을 줄 거냐? 고 했더니 “아저씨 그거 욕 몇 마디 얻어먹었다고 너무한 것 아니냐”고 되레 따지고 들었다. 경찰관도 내게 어느 정도 돈만 받고 그냥 돌아가셔서 일하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며 은근히 얼른 끝내기를 종용하는 것 같았다.

  그럼 얼마를 줄 거냐 했더니 얼른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이걸로 합의를 보자고 했다. 옆에 있던 경찰관도 그거라도 받으시고 얼른 가서 일하시라며 돈을 내 손에 쥐여준다. 애먼 사람 욕한 것을 생각한다면 법대로 처리하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하고 실랑이하는 것도 싫고 해서 돈을 받고 파출소를 나오는데 그 사람이 쫓아 나오면서 이젠 다 됐으니 서울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태우고 가면서 또 무슨 봉변당할 것 같아서 안 간다고 했더니 경찰관도 따라 나오면서 이 차는 안 되니까 다른 차를 이용하라며 그 사람을 붙잡았다.

 

  돌아서 나오면서 서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세상이 얼마나 험악해져 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됐다. 아무리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려야 하는 택시 기사한테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택시기사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불친절하게 대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서로가 웃으며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말 세상이 미쳤고 미친놈들이 많아진 걸까?

 

  아! 미친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