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실직
하루에 택시를 타는 손님을 대충 잡으면 50명 내외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적은 숫자가 아님을 알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만큼 갖가지 사연도 많다.
겨울이면 택시 영업이 잘 되는 편이다. 추운 날씨에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다 감기라도 걸리면 아파서 손해, 병원비 들어가서 손해이기에 추위에 떠느니 쉽게 접할 수 있는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요즘은 호출받아서 뜨는 택시가 많기에 빈 차등이 켜져 있는 택시라도 아무리 손을 들고 세우려 해도 탈 수가 없음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한다. 작년 연말쯤으로 기억된다. 한 떼의 손님이 도로에까지 나와 택시를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마침 손님이 없기에 차를 세우니, 한 사람을 태우면서 서로 인사하기에 바쁘다. 자주 연락하자 느니 한번 찾아뵙겠다느니 수다 아닌 수다로 운행시간이 늦어진다. 한참을 그렇게 인사를 한 뒤 손님은 오산을 가자고 했다. 1번 국도에 접어들자 손님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아저씨는 어떻게 해서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이런 분들은 자기의 하소연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기에 직업에 귀천이 있느냐며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짧게 대답해준다. 이윽고 손님의 하소연이 시작된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으로 아이들 공부시키는 데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갈 나이에 제약회사에서 명퇴를 당해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송별식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했다. 자신은 한번 직장은 영원한 직장으로 생각하고 그래도 부장 정도이면 정년퇴직까지는 안전하게 가리라는 생각에 아이들도 좋아하기도 해서 자식을 네 명이나 두었는데 갑자기 퇴직당해 막막하다는 것이다.
아내와 긴긴 이야기 끝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기로 하고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을 아껴 써가며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약속을 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데 막상 자식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큰아들이 자기는 공부를 해서 성공을 하고 싶은데 뒷바라지도 해주지도 못하면서 뭣 하러 자식은 많이 나서 자기의 꿈을 방해하느냐며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푸념하였다. 자신이 왜 그렇게 안일하고 한심하게 살아왔는지 너무 후회된다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자식들한테는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소리 내에 엉엉 울기까지 하였다.
참 뭐라 위로해줄 말이 없다. 먼저는 지금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 데 평생직장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와 만약을 대비해서 다른 길을 한 번쯤은 모색하고 있지 않았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나도 그때쯤이었으니까. 내가 처음 운전대 잡았던 이야기를 했다.
받을 돈은 많았었지만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니 흑자 부도를 내고 막막하여 죽으려고 생각까지 하였다. 차를 몰고 무작정 달려갔다. 산길로 접어들어 갈 수 있는데 까지 가 보았다. 여기쯤이면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 싶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딸아이가 배고프다고 울고 아들들은 무섭다고 칭얼대었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 조금만 참자고 아내와 다짐에 다짐을 하였지만 아내는 우리야 그래도 살 만큼 살았지만,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울며 매달린다. 아이들은 엄마가 우니 덩달아 목청을 돋우어 울어댔다. 가슴을 치며 나도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그까짓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돈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 아이들과 동반 자살했다는 말이 귀에 쟁쟁히 들려 왔다. 그래 살자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낮다는데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내 설움에 못 이겨 눈물이 났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하지 못하겠기에 길옆에 차를 세웠다. 그렇게 그분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택시 운전을 하며 벼라 별일을 당하며 살아도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으니 살만하더라고, 부모인 자신이 어렵고 힘들어도 자식들 꿈을 버리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힘을 내라고 했다.
같이 그렇게 울며 웃으며 이야기하다 이제 다신 울지 않겠다는 그분의 다짐과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돌아오는 길이 왠지 후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분으로 인하여 나도 내 마음속에 있었던 응어리를 털어낸 기분이었다. 추운 날씨인데도 창문을 열었다. 에이도록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훈훈했다.
지체했던 시간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