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
막내아들
막내아들이 5학년 때인 가였다.
하루는 아빠 하면서 방으로 들어오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는 말이
“아빠 공부는 누나하고 형이 잘하니까 공부는 누나하고 형한테 바라시고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한다.
제 딴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제 누나랑 형은 전교 1등에다 장학금을 받고 다니다 보니 그렇기도 하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언데?”
“저는 음악을 잘하니 음악 쪽으로 길을 열어 보겠습니다” 한다.
“그럼 음악 쪽으로 어느 길을 가려고?”
“드럼을 배우고 싶어요.”
“그래? 아빤 그런 쪽보다는 하지 못하는 공부지만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는 공부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요, 꼭 돌아버릴 것 같아요”
“네 엄마는 무슨 말씀하시니?”
“엄마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밀어주시겠다고 하세요.”
“네가 하고 싶다는 것이 어디 하나둘이니? 너한테 들어간 돈을 계산해 보면 누나하고 형한테 들어간 돈보다 더 많을 텐데.”
“제가 유명한 드럼연주자가 돼서 다 갚을게요, 그땐 엄마 아빠 모시고 세계 공연 다니면서 여행도 시켜 드릴게요.”
나는 마땅치 않았다. 막내아들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태권도 선교 단에 들어가서 선교활동을 하고 싶다고 해서 몇 년간을 도장에 보내 주었고
작곡을 전공하겠다고 해서 작곡가에게 개인 사사를 몇 달간 하고선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하루아침에 포기해 버리고 이만저만 신경 쓰게 하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 다니면서는 그럭저럭 운동은 하면서도 공부는 전혀 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때는 제 친구들이 상고를 간다고 해서 상고에 진학했더니 정작 제 친구들은 상고에도 진학할 만한 실력이 모자라 전부 지방학교로 가고 말았다.
저 혼자 상고에 다니면서도 워낙 성격은 좋은 아이라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1학년 때 학원폭력에 휩쓸려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상대 아이는 이렇게 보면 저능아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면 정상인 같기도 한 아이인데 겉으로 봐서는 전혀 저능아로는 안 보였다. 담임선생님도 그 아이만 감싸고도니까 제 눈에는 그 아이가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우리 막내만 보면 뒤에서 때리는 시늉을 하고 하다가 몇 번 걸려서 혼이 난 적도 있다고 했다.
하루는 화장실을 가는데 뒤통수가 이상해서 뒤돌아보니까 그 아이가 슬리퍼를 들고 쫓아오면서 때리는 시늉을 하다가 우리 막내한테 제대로 걸렸다. 우리 막내는 워낙 키도 크고 덩치가 황소 만해(185cm에 90kg) 다른 애들이 장난으로 손질하는 게 우리 애가 하는 건 폭행이 돼버리곤 했었다.
우리 애가 너무 화가 나서 그 아이에게 손찌검을 했나 본데 얼굴이 많이 부어올랐다.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우리 애를 봐주려 했는데 그쪽 아이 부모님은 그게 아니었다. 그쪽 부모 입장은 약간은 부족한 아이지만 정상적인 학교를 졸업시키는 게 소원이라 말한다.
학교에서는 학원폭력을 근절시키라는 교육청의 지시도 있고 하니 그냥 넘어 갈수 없다고 하였다.
아내는 여기저기 학교로 전화하고 찾아다니면서 전학을 시켜보려 했지만, 워낙 공부를 안 했기에 다른 학교에서도 우리 아이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래 상고 다니는 게 맘에 안 들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 인문계 진학하지.” 하며 자퇴서를 쓰고 나왔다.
워낙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해서 그렇지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닌 막내아들 몇 달간 열심히 공부하더니 그해 연합고사에서 그래도 좋은 성적으로 제 형이 다니던 수원에서도 명문고라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사회나 학교나 전과? 가 있는 사람에게는 넘지 못할 벽이 있었다.
워낙 덩치가 큰아이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하다 보니 학교 선생님들도 우리 아이를 맘대로 할 수 없었나 보다.
우리 아이가 지나가면 선생님들이 “너 한번 걸리면 끝나는 줄 알아.”하면서 엄포 아닌 엄포를 수도 없이 받았었나 보다. 별것 아니었을 가지고 학생부에 끌려가 온종일 벌 아닌 벌을 받으면서도 아이는 “이번에 또 사고 치면 끝장이다.”라는 아빠 말을 명심에 또 명심하고 있었나 보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선생님들 간에 우리 아이를 본보기로 잘라내면 다른 아이들을 쉽게 끌고 나갈 수 있다고 했단다.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학교에 가야 한다.” 고 했다 “왜 그러냐.” 고 물었더니 선생님께 대들어서 벌점 받았다고 벌점 감면을 해야 해서 학교에 간다고 했다.
그렇게 1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같은 학년 아이들은 우리 아이를 형이라고 부르며 그래도 대접을 해주었나 보다. 다른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한테 빵 사오라고 시키는 빵 배달이 학교에 알려지고 우리 아이는 한번 밖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게 덜미가 되어 학생부에 넘겨지고 하다 보니 아이가 이성을 잃었었나 보다.
작은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아이가 달려드는데 주먹을 뻗고 있던 우리 아이 주먹에 그 아이가 와서 부딪치면서
코뼈가 부러졌는데 의사 말이 코뼈 부러진 게 접시를 떨어뜨렸을 때 산산 조각난 것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는 그것을 빌미로 자퇴서를 요구 했다.
결국 또다시 자퇴서를 써야만 했고 우리 아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면서도 친구들을 만나면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 소풍을 간다, 무엇을 한다고 하는 소리만 들으면 속상해서 큰 덩치가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바에야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자격을 따면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졸업할 수 있으니까 검정고시를 준비해 봐라, 아빠도 검정고시 봐서 방송통신대를 졸업했으니까 어쩌면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야”
막내아들은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등허리에 땀띠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아이들 보다 6개월 정도 먼저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