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화답사

마북리 석불입상과 석탑

지슬의 세계 2019. 1. 30. 19:13

매번 수요일엔 나홀로 답사일로 다닌지가 벌써 3년 정도는 된 것 같다.

오늘은 우리 학교 동문과 같이 답사하기로 계획된 날 왠지 즐거움이었던가 잠을 설쳐다. 그래도 학교 동문과 함께 한다는 것이 좋기만 했다.


사실 마북동은 이모님이 근처에 살고 계셨기에 자주 왕래하던 곳이다.

그때는 문화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만 알았었는데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주변에 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느티나무는 1988년도에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을 당시 450년이라고 하니 지금의 나이로 치자면 482살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용인은 다른 지자체보다 고적에 대한 관심도가 많아서인지 주소가 정확히 표현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마북리 석불입상과 석탑에 대해 또 앞에 전시되어 있는 석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조선시대 석불입상이 봉안되어 있는 용화전. 용화전은 좌우 각 한칸의 건물에 전면을 제외한 삼면은 자연석을 이용한 방화담이 설치되어 있고 맛배지붕을 하고 있다.

전각 바로 좌측에는 남아 있는 부재를 모아 건립한 탑이 있다. 탑재는 파탄이 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세운 것으로 쌓아놓은 석재중에 다른 석재가 포함된 것으로 추측한다.

용화전 뜰에는 중앙의 당우를 중심으로 좌우에 비석들이 한줄씩 배열되어 있다.

이곳은 옛 용인현의 관문이고 한양으로 통하는 대로변이었다. 앞의 길과 평행으로 세워져 있었으나 도로 정비 등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비는 모두 14기이다. 이 중 현령 등의 송덕비가 10기, 군수 선정비 1기, 효자비 1기이고 나머지는 용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김홍집과 민영준 등 구한말의 인물의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본래 이곳 용화전에는 고려시대 '획주사' 라고 하는 절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한다.

불상은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장방형으로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눈은 크게 치켜뜨고 있으며, 코는 크고 오뚝하게 부각시켰으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얼굴에는 볼륨감이 전혀 없고 석인상의 엄격성과 근엄성이 강조되고 있다.

수인(手印)은 복부 부근에서 두 손을 모아 보주 내지 홀()을 잡은 계인의 형태이며, 가슴에는 ()’자가 양각되어 있다고는 하나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다. 착의는 불의가 아닌 관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의습선은 손과 배 아래 부분에만 몇 가닥의 선으로 간략히 표현하고 있다.

어깨는 상당히 움츠려 있는데, 묘주(墓主)를 공경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듯하다. 상의 전체 높이는 211.5, 머리 높이는 71.5, 어깨 폭은 51, 최대 측면 두께는 52이다.

양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혀있는 방형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이 상대석 뒷면에 치석된 옥심괴임의 폭이 1층 옥신의 폭보다 좁아 같은 석조물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마북리 석불 입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널리 유행하던 마을 미륵 신앙의 일종으로 민간에서 치병, 기자, 마을의 수호, 기복 등을 빌던 불상으로 여겨진다. 또 용화전 주변에는 주인을 잃은 많은 파탑된 석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출처 : 디지털용인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