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화답사

춘천 칠층석탑(보물제77호)

지슬의 세계 2019. 2. 6. 21:20

어느 누가 자기 집 보물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놓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리나라 보물은 누가 보아도 보물이기 보다는 생활에 불필요한 존재같이 취급받는 것은 사실이다.

춘천 칠층석탑도 그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은 한창 조성중이어서인지 겨울임에도 날씨가 따뜻해서 진흙 밭이었다.

조성중이어서 그런지 아직 안내판 하나 없고 주변을 둘러보니 버려지듯 반쯤 세워져 있는 안내석이 다였다.

높이 5.5m. 현재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 원래의 위치로 추정되는 소양로 한복판에 서 있다. 주변에 민가에 들어서 있어 어느 절에 속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며, 6·25 전쟁 때 심하게 손상되었다. 아랫부분이 파묻힌 채 1층 받침돌만 나타나 있어 받침 부분의 구조가 1층인지 2층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석탑은 여러 부재를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받침돌의 면석(面石)4장의 널돌로 구성하였고, 면석 위의 덮개돌은 1장의 널돌로 덮었지만 파손이 심하고 많이 닳아서 세부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받침돌의 덮개돌 위에는 몸돌을 직접 놓지 않고 1장의 널돌을 굄돌로 놓은 뒤에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이 굄돌은 연꽃을 위로 새긴 앙련대(仰蓮臺), 연꽃의 꽃잎은 모퉁이에 이를수록 비스듬히 새겨 고려시대에 나타난 연꽃무늬 배열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굄돌을 따로 끼운 것은 이전 시기 석탑의 덮개돌 윗면에 둔 몸돌 굄대를 대신한 것으로, 이와 같은 연꽃무늬의 굄돌을 끼운 것이 고려시대 석탑의 특이한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탑신부(塔身部)는 여느 일반적인 석탑과 같이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다. 1층 몸돌만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그 외의 지붕돌과 그 위의 몸돌은 특이하게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1층 몸돌은 매우 높은 편으로, 각 면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을 얕게 새겼다. 2층 이상의 몸돌은 1층 몸돌에 비해 높이가 거의 1/5 정도로 낮아졌지만,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하고 너비도 알맞은 체감률을 보여 우아한 기품을 보인다.

각 층의 지붕돌은 처마와 처마가 맞닿은 전각(轉角) 부분이 많이 손상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대체로 윗면은 평박(平薄)한 편으로 몸돌 굄이 있고, 아랫면은 제법 높지만 둔중(鈍重)하지는 않다. 곧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고 추녀는 높이 올려져 전각의 반전은 경쾌해보인다. 추녀에는 낙수홈이 오목새김 되었고, 아랫면의 받침은 1~3층은 6단이지만 4층 이상은 5단이다. 6단의 지붕 돌 받침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석탑만의 특징이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석탑은 받침돌이 넓고 큰 데에 반해, 몸돌과 지붕돌은 낮고 작은 편이다. 다만, 1층 몸돌을 높게 하여 비례의 불균형을 보충하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건립 시기는 지상에 드러난 받침 부분의 구성 방식이나 굄돌에 조각된 앙련과 삽입 방식 등 세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