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동문 소식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만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서로 교제하며 존중하며 우애를 나누며 산다는 것은 무슨 거룩하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생길에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거의 인생의 중반전을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배우고 익히며 인연을 맺고 동문수학한 사람들이 졸업을 하고 그 인연을 이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 아닐까? 왜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지 나도 궁금하기만 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잔뜩 찌푸린 날씨에 집을 나서지만, 마음만은 동문과 함께하는 날이기에 가볍기만 하다. 자가용이라는 교통수단에 익숙한 생활을 접고 대중교통인 전철을 타고 향한 곳은 서울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미로 같은 길을 기웃거리며 출구를 빠져나오니 정형화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선배님 이쪽으로 오세요.”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 앞에서 동문회장이 손짓한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조금 기다리다 보니 동문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박물관으로 들어가니 얼마 전 뉴스로 접했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 열리고 있었다.
오백나한(五百羅漢)은 강원도 영월 폐사된 창령사(蒼嶺寺) 터에서 2001년에 발굴되었다고 한다. 어두운 전시장에 검은 스피커와 어울려 진열되어 각각의 조명으로 투영된 나한들은 종교가 다른 나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존재였다. 마주하는 순간 그 질박하고 친근한 표정이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불가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 ‘나한’이 일상 속 평범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투박한 매력으로 어린아이에서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람객과 전문가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고나 할까?
어떻게 비슷하게도 닮은 곳이 하나 없는 나한은 일상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듯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 내면의 충일감을 일깨우는 명상의 나한, 어떤 나한은 마치 순진무구한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또 어떤 나한은 이가 빠진 촌로의 미소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한들 사이를 거닐며 혹여 나의 마음을 닮은 나한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같이 관람한 우리 동문들의 얼굴은 무슨 신기한 것을 본 것같이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도 어느새 숙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관람 후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이쪽으로 모일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기에 식당으로 가는 도심의 길을 거닐며 늦은 만남의 회포를 풀며 친근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왜 사람들은 공유했던 추억들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지?
예약한 식당이 그리 멀지 않는다는 회장님 말에 길을 걷다 보니 습하고 더운 날씨에 심신이 지쳐갈 즈음 이촌동에서 유명하다는 메밀 전문집에 도착했다. 서로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장소를 물색하던 우리는 목적지를 이태원으로 정했다.
서울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외국의 거리. 만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체취? 낯선 듯 친근한 모습들 그 속에 우리도 동화되어 들어갔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빗방울이 점점 옷깃을 적신다. 비를 피하고자 우리 일행은 눈에 들어오는 가까운 호프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몇 시간을 나눴던 이야기들은 어떤 때는 주인공으로 어떤 때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우리 속에 머물다 지나간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우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언제까지인지 모를 시간 속으로.
박물관앞 기념촬영
해설사의 해설에 귀를 쫑긋
대형 스피커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한들.
휴일이어서 그런지 관람객들이 많았다.
김경미 동문
이태원에서의 즐거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