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 이야기
지슬 박경남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필명을 뭐라고 할까?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내에게 물어보고 딸아이와 아들들에게도 자문하고,
지도했던 선생님께도 도움을 청했지만, 마음에 드는 필명이 없이 몇 해가 흘렀다
그렇다가 갑자기 필명이 떠오른 것이 “지슬”이다
워낙에 미련하게 생각하고 밀어붙이기를 잘하는 성격이라 “지혜롭고 슬기로웠으면?” 하는 생각으로 “지슬”이라는 필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던 터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지슬이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라고 한다.
혼자 웃음이 나왔다. 회사 다닐 때 내 별명이 썩은 감자였다.
대머리는 벗겨진 게 바른말로 사람들에게 훈계를 잘하니 회사 동료들이 놀려대는 말로 썩은 감자라고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싫진 않았다.
그래서 필명을 지슬로 정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영화를 보셨냐고?”
“무슨 영화인데?” 했더니
“지슬”이라는 영화란다.
“금시초문인데?”
지인은 내가 그 영화를 보고 필명을 “지슬”로 정한 줄 알았단다.
세상 참 좋아졌다. 바로 인터넷 검색해 보니 “지슬”이란 영화가 해방 후 1948년 11월부터 한국군과 미 군정이 빨치산을 토벌한다는 미명 아래 제주도 양민들을 학살한 4/3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가슴 아픈 사연의 끝나지 않은 세월의 역사를 가진 영화제목.
“지슬”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유명해지니 이젠 자신 있게 필명을 써야겠다.
역사적인 사건의 영화제목도 되곤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