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돌의 눈물 가슴으로 읽는 시 숫돌의 눈물 조연환 녹우정 머슴살이하며 솟돌에 낫을 갈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여린 숫돌에 몇방울 물을 떨어뜨려 낫을 갈면 숫돌은 제 몸을 깍아 날을 세워준다. 땅 한 평 없이 당신 몸 하나로 9냠매를 낳아 기르신 아버지 아버지는 숫돌이셨다 당신 몸깍아 자식 날을 세어주신.....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공무원문예대전 대상 수상작 조청장은 충남 금산에 귀촌하여 녹우정이란 정자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살고 있다. 하루 시 한편 2021.02.03
2020년 수원문학 신인상 수상작 차상 (봄소리 - 차미영) 2020년 수원문학 신인상 수상작 봄소리 차미영 연분홍 꽃잎 위 꽃샘바람 지난 자리 살폿한 눈꽃 어둠 회초리 치던 입춘의 밤 버들강아지 멍든 눈 햇살 덮고 한낮 되도록 잔다 겨울 버틴 자라자리 마다 들리지 않던 물소리 보이고 나무 눈 비비고 일어난다 빨랫줄에 묵은 때 벗은 외투 칙칙한 겨울 털어내고 집안 맴돌던 아가 두 팔 벌려 봄에 안긴다 개나리웃음 환하다 하루 시 한편 2021.01.12
2020년 수원문학 신인상 수상작 차상 (아버지 - 차미영) 2020년 수원문학 신인상 수상작 아버지 차미영 아버지 뒤통수는 천길 낭떠러지 안아주지 않은 저편 길 있다 하얀 시트 위 날개 다친 새되어 당신 부러져 있다 칭얼대는 호롱불 창호지에 젖은 어린 것 울음소리 어미 마음 저미고 왕무재 넘는 발걸음 천근만근이다 밤마다 젖비린내 찾던 아이 수숫대처럼 자라 마음 닫은 채 높디높은 가림막 치고 있다 반백년 부부로 산 어머니 그 벽 허물려 곡괭이질 하다가 사랑도 받아야 줄 수 있는 거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랑 고팠던 아버지 숯 된 아이 가슴에 얹고 산 어미의 나날 높은 담장 허물고 숱 많은 불빛 따사롭다 하루 시 한편 2021.01.12
나는 사건이다 - 이상정 나는 사건이다 이상정 나는 사건이다 태어남 자체도 사건이고 하루하루를 맞이함도 사건중의 사건이다 더러는 내 죽음조차도 사건이다 나는 보호관찰소 철망을 따라 걸으며 사건번호를 단 파란 제복의 관찰 대상자들을 본다. 곤봉을 차고 의자에 앉아 수인들의 노역을 감시한다. 장총을 들고 탈출을 경계한다. 철조망 주위에 봄은 내려 질기디 질긴 잡풀들이 철조망을 넘는다. 푸른 제복의 사나이가 행인들을 관찰한다. 1998년6월17일 제3시집〈나는 사건이다〉중에서 하루 시 한편 2021.01.05
낙엽-강심원 (수원문학 54 2020년 겨울호) 낙엽 강심원 나무는 추워지는지 알면서도 추워, 추워하며 옷을 벗지 낙엽은 아쉬워하는 듯하면서도 휘-익, 추락하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지 ‘야! 자유다!’ 환호하지만 자유는 순간일 뿐 숱한 발걸음에 묻혀 가을의 전설이 되지 ‘아프잖아! 눈물이 나잖아!’ 강심원 2007년 《문학미디어》 등단 아동문학 (동화) · 시 부문 신인상, 문학미디어 작가상 수상 시집 『패랭이꽃』, 동화 『나비 날다』 하루 시 한편 2021.01.02
2020 수원문학인상 수상작(매발톱꽃의 은유-김순천) 매발톱꽃 은유 김순천 보랏빛 곱디고운 꽃송이 피워 놓고 웃음기 가득 뭇시선을 즐겨도 내색할 수 없는 속내 고독이 서말이라 해 뜨고 해 질 때까지 촉각 곤두세우고 괜찮아 괜찮아 해 보지만 다독이면 다독일수록 커져가는 공허 세상의 길에 서서 노을 함 모금 삼키며 뜻 모를 부호로 채워가는 하루의 끝 굴절된 욕망의 기억을 봉인한다 *꽃말 : 버림받은 애인 하루 시 한편 2021.01.02
2020 수원문학인상 수상작 (낙엽의 독백-김순천) 2020 수원문학인상 수상작 낙엽의 독백 김순천 길고 긴 여정에 어룽대던 꿈 지나는 세월의 갈피애 묻고 이제는 마음 비우려네 하늘 한폭 풀어 자리 지키며 살아온 날들 메아리 없는 노래로 허공 두드려도 마른 숨 고르는 기꺼운 조락 스스로 애썼다 자위하는 속내 뉘라서 알까만 장엄한 해돋이의 새 기운 다시 안는 어느 날 위해 지금은 내가 나를 벗는 중이다 하루 시 한편 2021.01.02
운여해변 운여해변 지슬 박경남 거칠었던 파도도 피곤에 지친 듯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조차도 숨을 죽인다 소나무 숲의 그림자가 빛을 그리워 할 때 은하수가 신기루 같은 넓은 길을 펼친다 매서운 추위에 잔뜩 움츠려 걸었던 눈길이 소년의 마음에 각인된 별이 유난히 밝았던 그 날의 잔상 외가로 가는 길 버스마저 끊긴 텅 빈 들판 길을 걸으며 내뿜는 더운 입김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는가 초로에 접어든 나이에 별을 헤는 소년이 되어 본다 하루 시 한편 2020.12.31
2020 수원문학 작품상 수상작 2020 수원문학 작품상 수상작 새벽4시 김경은 밤새 찬 공기가 걸레질한 골목은 젖은 채 누워 있다 땅 위에 켜켜이 쌓인 피로가 뜬 눈으로 갱년기 옷자락을 잡았다 텅 빈 무대의 주인공처럼 요란한 조명을 밝힌 청소차는 어제처럼 골목을 쓸고 지나간다 더는 새벽달에 머무는 사람 사는 이야기도 없다 듬성듬성 인터넷 뉴스에 일상을 빼앗긴 신문 소리가 고양이 걸음처럼 들려오고 반 눈 뜬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닫힌 창문들에 꽃등을 달 즈음 나는 먼데 소리 들리는 철길에 펼쳐진 건반을 두드린다 하루 시 한편 2020.12.31
2020 수원문학 작품상 수상작 2020 수원문학 작품상 수상작 구두수선공 김경은 거친 보도블록에 닳아버린 고단함이 삼천원 지폐로 찾아든다 오래되어 나지막한 집 뒷짐진 늙은 청춘 한 생을 바쳐온 곳 벽보에 펼쳐 걸린 먹물 뿌려 그린듯한 유연한 손놀림 젊은 날 밤을 새워 다독이던 꿈의 궁전 모서리가 반듯하다 헤아리지 못할 별을 달아둔 구두 닦는 남자 키 큰 은행나무 곁에 그는 잔설에 몸 젖어도 맨발로 서있다 하루 시 한편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