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화답사 184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내가 섬기는 수원임마누엘 기사선교회에서 예산 출렁다리를 구경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한 곳이 수덕사 근교였었다. 수덕사는 여러번 왔다 갔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대웅전이 보물도 아닌 국보라는게 눈에 띄었다. 걷으로 보기에 다른 사찰과 달리 그리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느낌이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국보. 국보 제49호. 앞면 3칸, 옆면 4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얹었다. 기둥 위에만 공포(栱包)를 올린 전형적인 주심포(柱心包)계 건물로, 11줄의 도리를 걸친 11량(梁)의 가구(架構)를 갖추었다. 1937년에 건물을 뜯어서 수리할 때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었다. 이에 의하면, 이 건물이 1308년(충렬왕 34)에..

고적문화답사 2021.02.22

독산성 세마대

처음 독산성을 오를 때 위치를 몰라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길을 힘겹게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보적사 앞으로 올라가는 길을 알아 독산성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체제가 허리가 좋지 않아 많이 걷지를 못해 가장 가까운 거리로 길을 잡아 독산성을 올랐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나들이가 쉽지 않았는데도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쉽게 오를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의 나들이객이 많았다 세마대에서 바라 본 동탄 신도시 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반짝 해가 나긴 했어도 먹구름이 가시지 않았다.

고적문화답사 2021.02.19

홍섬 묘

홍섬(洪暹, 1504년 10월 17일(음력 9월 10일)~1585년 3월 11일(음력 2월 11일)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양 토홍계으로 아버지는 영의정 홍언필이며, 조광조의 문인이다. 자는 퇴지(退之), 호는 인재(忍齋],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을 거쳐 이조좌랑으로 김안로의 전횡을 녹단하다가 흥양에 유배되고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된 뒤 다시 수찬, 부제학, 경기도 관찰사로 있다가 좌찬성으로 이조판서와 예조판서를 겸하고 대제학으로 우찬성, 좌찬성, 도승지, 호조판서를 지냈다. 1560년, 공조판서로서 이량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사직당했으며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으로 복직되어 예문관과 홍문관의 대제학, 형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1567년, 선조가 즉위하..

고적문화답사 2021.02.17

홍담 효자각-화성시의 향토유적 제4호

어제 눈이 내린 탓인지 오늘은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더 내려갔는지 무지하게 추운 날이었다. 답사에 재미들인 후로는 추위를 그리 염두에 두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괜히 온게 아닐까?하는 마음이 든 답사였다. 홍담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으로,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도승지(都承旨)·대사헌(大司憲)·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의 요직을 거친 훈구파(勳舊派)의 거두였다. 생전에 부모를 섬기는 효심이 지극하여 사망한 뒤 고향인 남양부(南陽府)에 효자정문(孝子旌門)을 세워 효행을 기렸다. 현존하는 효자각은 1886년 11월 보수된 것으로 정면 2.37m, 측면 1.83m이다. 맞배지붕에 한식기와를 얹은 겹처마 구조이며, 8각형의 장초석(長礎石) 위에 4개의 원주형(圓柱形) ..

고적문화답사 2021.02.17

한명윤 밀양박씨 충렬각-화성시 향토유적 제5호

겨울같지 않은 겨울 날씨는 흐리지만 따뚯한 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답사. 조선시대 충신 한명윤과 그의 부인 밀양 박씨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신, 열녀문. 조선 중기의 문신. 자(字)는 회숙(晦叔)이고, 부호군공(副護軍公 : )의 아들로 부사공 수정(府事公 : 守貞)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숙인 안동 김씨(安東金氏)니 교위 창신(校尉: 彰信)의 따님이시다. 선조 1년(1568)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추천에 의하여 연은전 참봉(延恩殿 參奉)이 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동왕 23년 영동현감으로 부임하여 치적(治迹 : 백성을 다스린 성적)을 올렸다. 동왕(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동에서 의병을 모아 용전(勇戰 : 용감하게 싸움)하여 전공(戰功 : 싸움에서 이겨서 세운 공로)을 세우니..

고적문화답사 2021.02.17

이곤 선생 효자문

이곤선생 효자문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리에 있는 것으로 1986년 5월 20일 화성시의 향토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0월 23일 향토문화재(유형) 제3호로 변경 재분류되었다. 이곤의 본관은 원주이며 과의 교위공 한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 선령. 보령. 옹진. 음죽 등의 현감을 지냈으며, 외직에 재임하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추운 겨울날 잉어와 오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이곤은 백방으로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이곤의 지성에 천지신령도 감동한 듯 마침내 강의 얼음 속에서 잉어를 구할 수 있었고, 깊은 산 속의 덩굴에 매달려 있는 오이를 기적적으로 얻어 부모를 공경했다고 한다. 그의 극진한 효성은 나라에까지 알려져..

고적문화답사 2021.02.11

명고서원지

화성에는 3개의 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매곡서원, 명고서원 그리고 안곡서원이다. 명고서원의 기둥을 받치고 있었던 주추돌이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춧돌 뿐 아니라 서원에서 사용되었던 돌들도 여러개 볼 수 있었다. 지형을 볼때 사당터와 강학공간이 구분되어 있던 것을 발 수 있다. 이런 터는 겨울에 답사를 해야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여름은 수풀이 우거져 돌들을 덮어 보지 못하는 게 많다. 세월이 자나도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서원의 구조들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적문화답사 2021.02.11

화성 외금양계비

외금양계비는 개인적으로 꼭 보고싶었던 비이다 마침 학교 선배와 답사를 가게 돼서 보고 왔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지금으로 이야기한다면 그린벨트 성격으로 나무의 벌채나 농지 개간, 가축을 기르는 행위를 금지하는 표석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로 확인하기 바란다. 융릉과 건릉의 화소 및 외금양지,화성 외금양계비 (ggcf.kr)

고적문화답사 2021.02.10

고성이씨 신도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를 말한다. 조선 초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워 철성군(鐵城君)에 봉해졌던 용헌(容軒)이원(李原)의 아들 번연(番延)의 신도비이다. 원래의 비는 세운 지 오래 되어 비면 마멸이 심하여 1818년(순조 18) 비문을 일부 개찬(改撰)하고 다시 세운 것이다. 비문은 한치응(韓致應)이 지었고 이가순(李家淳)이 글을 썼다. 처음에는 월곡면 미질동에 위치하였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4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비는 고성이씨 재사가 있는 진입로 좌측에 있는 비각으로 보호되고 있다. 앞면에 “有明朝鮮國 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總府副摠管行通訓大夫靈山縣監大邱鎭管兵馬節制都尉固城李公神道碑(유명조선국 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고적문화답사 2021.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