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시간 형성과정
개항 무렵 근대적 시간관념이 들어오기 전
한국사회는 농업사회로 농민들의 한해살이는
근대적 시간관념이 아닌 농사일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시간관념아래 있었다.
명절과 생일 제삿날 등 일상생활에서는 음력을 사용했지만,
한해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었다.
명절과 생일 제삿날 등 일상생활에서는
음력을 사용했지만, 한해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는
계절변화의 음력이 어긋나는ㄴ 현상을 보완할 수 있었다.
공식역법도 달의 운행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에 맞춘
태음태양력인 시헌력을 사용하였는데
갑오.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태양력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근대적 시간체계는 1911년 일제가 조선민력을
발간하면서 공식화 구체화 되었다.
근대적 시간관념의 확산에는 열차의 운행이
큰 역할을 하였다.
비록 식민지 조선에 건설된 철도는 일본의 자본 및
상품과 군대. 이민자들을 조선으로 들여보내고
조선의 원료와 식량 및 노동력을 일본으로 수송해가고
만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식민지형 철도였지만
열차동과 시간표가 각 지역마다 할당되면서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근대적 시간관념을
준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근대적 시간관념을 주로 전파한 매체는
학교와 공장이었다.
학교와 공장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시간에 따른
하루일과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통제함으로써
근대적 시간 훈련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근대적 시간관을 보급하기위해
1921년 6월10일을 시의 기념일로 지정하고
시간존중과 정시여행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국인의 사회에서는 문화 계몽운동 차원에서
일일 생활계획표 명사들의 하루시간 배분 표를
잡지에 실으며 근대적 시간관념을 보급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근대적시간의 관념이 정착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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