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산 산행 후기
벼르고 벼르던 정기 산행 날이었는데 구름은 좀처럼 해님에게 자리를 내주질 않는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산악 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형님 비 와도 산행하는 건가요?” 비가와도 계획했던 산행은 진행하신단다.
‘그래 가기로 마음먹었던 거 비 한번 실컷 맞아 보자’는 생각으로 화서역으로 향했다.
전철역 플랫폼에서 형님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시간 하나는 똑소리 나게 잘 지키시는 분이시다. 정확히 9시 30분에 화서역 출발이다
관악역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 근처에서 물과 라면을 사고 맛으로 유명하다는 만두를 사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더니 산행을 시작할 즈음에는 폭우로 변했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했다. 이런 날씨에 위험하니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오란다.
사나이가 한번 마음 먹은 것 포기할 수 있는가? 산행은 계속되었다
빗줄기의 섬세한 소리를 듣는다. 어디에 떨어지는가에 소리가 달라진다.
갈잎에 떨어지는 소리와 솔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다. 생명이 있는 소리다.
삶의 숨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하다. 또한 무생물인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또한 다르다.
생동감이 없다 툭툭툭 의미 없는 소리 일 뿐이다.
빗방울도 인생과 같은 것, 한번 이 땅에 떨어진 빗방울은 언제 또다시 이 자리에 떨어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유한한 인생이야 말할 것 없지만 무한하고 불변한다는 물방울도 기약할 수가 없다.
물기만 머금고 있던 계곡은 어느새 하얀 물줄기가 한 획을 그으며 자리 잡았다.
여느 때 같으면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된다. 바위 사이를 누비던 물줄기가 바위를 넘어 폭포로 변했다. 빗줄기를 뚫고 산을 오르는 자만이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장관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산 정상에 거의 오르니 비는 멈추고 발밑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사람이 굵은 빗줄기를 뚫고 산행을 하였다. 자리 잡고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의 색깔과 구름의 색깔이 똑같은 하얀 색이다. 구름 사이로 보이던 안양 시내가 간데없다.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돌아본다. 구름은 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신선이 되라는 듯이 발아래 세상을 덮어 버렸다.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이 축복이나 하듯이 나를 바라본다. 솔잎에 맺혀진 물방울이 보석같이 빛난다. 바위틈에 피어난 보라색 꽃이 생명의 신비함마저 엿볼 수 있게 한다. 어느 누가 무심코 밟고 지나가거나 꽃이 예쁘다고 꺾어 가 버렸으면 지금 나는 볼 수 없었을 것을 손을 대지 않고 보고만 갔을 산우(山友)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려오는 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육십이 넘으신 형님이 오십이 넘은 동생을 배려해 주시는 것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물기 있는 바위는 조심해라 미끄러질라”
“나무뿌리는 밟지 마라 나무가 아파할 거야”
“나뭇잎 밟지 마라 물기 있는 나뭇잎은 미끄럽다”
“바닥에 모래 있으니까 조심해라 넘어진다.”
마치 어린아이 보살펴 주시듯 배려해 주시는 형님.
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는 찰박찰박 물 장난치시는 모습은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모습이었다.
오늘 하루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