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횡재

지슬의 세계 2013. 9. 7. 23:37

횡재

 

세상이 급변하다 보니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요사이 새로운 풍속도 중의 하나가 할머니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그중에 열에 아홉은 외손주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리라.

먹고살기 힘드니 서로가 맞벌이하느라 그런 경향이 있겠지만 왜 굳이 친손주보단 외손주들을 데리고 다니는지. 외손주는 내 딸이 낳았으니까 내 손주가 확실하지만, 며느리가 낳은 손주는 내 아들의 자식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터무니없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걸 보면 이제 우리나라가 모계사회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일 중에 제일 손님이 없어 한가한 시간이 출근이 끝나고 난 후 두어 시간일 것 같다.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쏘다녀 봐도 여의치 않으면 역전이나 터미널 쪽으로 차를 갖다 대는 것이 요령이 되었다.

터미널에 차를 갖다 대고 한참을 꽁무니를 이어가다 내 차례가 되어 젊은 할머니와 네댓 살 된 손녀가 차에 올랐다.

“할머니 돈도 없다고 하면서 택시를 타면 어떻게 해”

“네가 할머니한테 자꾸 업어달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택시를 탔지”

“아저씨가 돈 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네가 아저씨한테 뽀뽀 한번 해주면 돈 안 받을게”

“정말이에요. 아저씨 정말 내가 뽀뽀해주면 돈 안 받을 거예요?”

“그래 정말이야 아저씨한테 뽀뽀해주면 택시비 안 받을게”

“그럼 약속해야 해요. 우린 아주 멀리 갈 거란 말이어요. 자 약속” 하며 누구한테 배웠는지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고 녀석 제 엄마 아빠 혼깨나 빼게 또랑또랑 말도 잘한다.

 

나는 손주들을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들에게 항상 그렇듯이 누구냐고 물어본다. 그 할머니도 외손녀를 데리고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인데 조금 걷다 보니 아이가 힘든지 자꾸 업어달라고 하기에 힘도 들고 해서 택시를 탔단다.

친손주도 봐주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할머니들은 친손주들은 외할머니가 봐주니까 자연스레 자신들도 외손주들을 봐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며느리 찾고 마음에 안 들면 며느리 흉보고 하지 않겠는가? 의아해한다.

그러니 점점 며느리들하고는 멀어지게 되고 자연히 딸과 가까워지게 되다 보면 결국은 우리나라가 모계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목적지에 도착해 요금을 주시며 할머니가 손녀딸에게 얼른 내리라고 독촉을 하니 이 아이는 할머니가 돈을 내는 것을 못 보았나 보다.

“할머니 이 아저씨한테 뽀뽀해 줘야지”

“하지 않아도 돼 얼른 내리기나 해”

“아니야 뽀뽀해 주기로 약속했잖아 할머니가 그랬잖아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아빠도 그랬단 말이야.”

“그래 약속했으니까 아저씨한테 뽀뽀해줘!” 하며 내가 볼을 내미니까,

요 녀석 얼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더니 입술에다 뽀뽀를 쪽 하는 것이다.

하이고 세상에 이런 횡재가 있나 네댓 살 된 꼬마 아가씨하고 입맞춤을 다 하다니 하하하

오늘은 돈 안 벌어도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그렇게 하루가 세월을 따라 과거로 흘러들어 간다.

 

출처 : 아람문학, 시인과 비둘기
글쓴이 : 지슬 박경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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