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학선생의 고민
택시를 즐겨 타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도 골목이나 아파트 안까지 들어가는 사람들을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게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을 들 수 있고 두 번째로는 장애우나 아기들을 데리고 다니는 아기 엄마나 노인 분들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를 든다면 조금이라도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질이 안 좋은 기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꺼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기사들이 일을 나와서 첫 손님을 어떤 사람을 태우느냐에 따라 하루 일을 미리 점쳐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택시 영업은 기사인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손님이 어떤 방향으로 갔을 때 다음 손님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고, 또 다음 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 간의 기사들은 인위적으로 일을 짜 보려고 자기가 장거리 손님 태웠던 곳으로 아무리 멀다 하여도, 길거리에 손님이 택시를 세우려 손을 든다 해도 안 모시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서 거기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날은 첫 손님을 잘 못 태운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손님이 타기만 하면 골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길에 대문이 열리더니 젊은 사람이 나오면서 택시를 잡는다. 목적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아직 해 떨어지려면 시간이 남아 있는데 술에 많이 취한 생태로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낮술에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 다는 옛말이 있듯이 나는 그런 사람에게는 거의 말을 붙이지 않고 조용히 목적지까지 태워다 드린다. 헌데 공교롭게도 먼 시외(충남 서천)로 나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아차 손님 잘 못 태웠구나. 요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하는 수없이 조용히 운전을 하고 가는데 이 손님이 먼저 말을 건다. 아저씨는 자녀가 몇이냐, 딸이 시집을 갔느냐, 사위가 뭐하는 사람이냐는 등의 말을 순식간에 물어왔다. 차근히 대답을 해주니 이 사람 자기 신세 한탄을 시작한다. 자기는 수원에서 그런대로 유명한 고등학교 수학선생으로 재직하다가 다른 뜻이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나름의 사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였는데 아내와 처가 식구들이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그날도 일찍 사업에 대해 알아보고 일찍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도 아이들도 없고 식탁에 쪽지가 한 장 남아 있어서 보니 장인어른이 써 놓은 메모에 ‘나는 유능한 수학교사한테 딸을 시집보냈지 하찮은 장사치한테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으니 복직을 하던가. 아니면 이혼을 해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고 화가 나서 처가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만약에 아저씨가 제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다시 물어왔다. 참으로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남의 가정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있겠는가? 딱하기도 하고 해서 조용히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해 본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고생길로 접어드는데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잘 나가던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지금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길 터이고 고생은 불 보듯 뻔 할 터인데 좋다고 할 사람은 없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해줬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직장도 다녀 봤고 나름대로 사업도 해봤고 사업의 부도로 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노라 말했다. 다른 일은 아내가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주어 큰 탈은 없었지만, 택시 운전을 한다고 했을 때는 아내의 반대가 심했었다는 말을 했다. 나도 처음엔 이 일이 좋지는 않았었다. 어느 누가 택시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더군다나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나 나름의 조처를 해서 이 길을 택한 것이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가에 가서도 어른들과 시비하지 말고 나름대로 사업에 대한 설명을 차근히 드리고 아내와도 충분한 협의를 해서 결정하는 게 좋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무슨 일이 있을 땐 먼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보호 본능이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결정에 당위성을 막무가내 식으로 주장하거나 남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아왔다. 또 자기가 사업을 하면 많은 사람이 도와준다고 하고 또 도와줄 거라고 착각하여 충분한 검토 없이 나름의 생각만으로 사업을 결정하고 진행하다 보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남의 일 같지 않아 왠지 심란했다. 젊은이가 화가 난 김에 처가에 가서 실수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하고자 하는 일이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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