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배기 사랑
지슬 박경남
옛날 어릴 적
겨울 방학 때 외가에 가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에
할아버지는 도끼와 지게를 지시고
오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느라 무엇을 하러 가시는지
관심조차 없었지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면
할아버지는 지게에 한가득
나무를 지고 내려오셨습니다.
왜 하필 이렇게 추운 날
나무를 하러 가시는지 알지 못했지요.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추위를 무릅쓰고
나무를 하러 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서울에서 따뜻하게만 살아온 외손자들이
혹여 추위에 밤잠 못 이룰까 봐
고자배기를 털어다 아궁이 깊숙이 넣어두면
밤새 타며 마르며 방을 데워 주어
손자들 따뜻하게 잠재워 주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가끔 산엘 오르다 보면 고자배기를 봅니다.
무뚝뚝하시고 정이 없으실 것 같아 보였던
깡마르시고 왜소하셨던 외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사랑은 고자배기 사랑이었습니다.
고자배기 : 그루터기. 소나무 등속 관목의 썩은 밑부분을 일컫는 경남 안의 지방 방언.
소나무 고자배기에는 송진이 축적되어 있어 겨울철 땔감이 귀했던 옛날에는 은은하고 오랫동안 태울 수 있는 좋은 연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