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아이스께끼의 추억

지슬의 세계 2018. 2. 9. 13:09

 

아이스께끼의 추억

 

누구나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씁쓰레한 웃음을 머금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내 사촌 동생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녀석은 공부라면 진저리나게 싫어하는 녀석이었다. 얼마나 공부하기를 싫어했으면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담임선생님이 하도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하기에 동생에게 온종일 화장실 청소할래? 아니면 공부할래? 하시며 묘한 카드를 꺼내 들으셨다.

 

  그 당시 동생 담임선생님은 우리 집안에서도 잘 아는 형님뻘 되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이 자자했고 그 선생님을 사위로 삼고 싶은 어른들의 암투가 벌어질 정도로 성실하고 착한 분이셨기에 내 사촌 동생을 어떻게든 사람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애를 쓰다 쓰다 안 되겠기에 양자택일의 선택을 하라고 했지만, 이 녀석을 지금의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말 그대로 냄새가 지독히 나고 온갖 벌레와 구더기가 득실대는 재래식 화장실 청소를 하겠노라고 대답하는 통에 담임선생님이 너 언제 사람 될래? 하며 붙들고 우셨다는 후문이 자자했었다.

 

  우리 아버지와 큰아버지께서는 작은아버지도 어렸을 때 그러셨다고 하시며 그 피가 어디 가겠냐고 공부는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까지 하셨다.

 

  어른들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녀석은 학교 빠지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장사로 성공해 보겠노라고 말하면서 한여름엔 아이스께끼 장사를 했다. 그런 방면에 소질이 있어서인지 장사를 곧잘 했었고 그 아이 주머니에는 우리 어렸을 적에 보지도 못했던 돈이 항상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무서워 사촌 동생을 부러워하면서도 감히 따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가 내 바로 밑에 동생이 부모님 몰래 한두 번씩 따라서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께끼 장사를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사촌 동생에게 이야기했더니 좋은 뉴스를 알려주었다.

 

  며칠 후면 윗동네 학교가 소풍을 가는데 그곳에 따라가면 께끼를 쉽게 팔 수 있다고 귀띔을 해 주었다. 나는 내 동생도 모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는 척하며 께끼 만드는 집으로 가서 책가방을 맡기고 통에 께끼를 하나 가득 담아 들고서 소풍 간다는 곳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게 그런 소식을 전해준 사촌 동생 녀석은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기는 했지만 나 혼자 께끼를 팔면 더 많이 팔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아뿔싸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폭우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건만 다른 장사하는 사람들도 안 오고 소풍을 간다던 학교 아이들도 하나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렸건만 사람들이 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께끼 통을 메고 터덜터덜 동네로 들어오니 그때야 사촌 동생 녀석이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소풍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고, 하나님 맙소사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풍을 따라가면 다른 날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말에 책가방을 맡기고 한 통 가득 담아 온 께끼값을 어쩌란 말이냐. 걱정돼서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사촌 동생 녀석은 께끼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고 또 께끼집 주인을 잘 알고 있었기에 께끼가 가득 담긴 통을 들고 께끼집으로 들어가 무어라고 한참을 말하더니 내 책가방을 찾아가지고 나왔다. 뭐라고 했느냐고 물어봤더니 께끼가 아직 녹지 않았으니 께끼 통속에 넣어두었다가 내일 날이 좋으면 자가 팔아주기로 했단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요령도 모르는 내게 사촌 동생은 구세주와 같았다.

온종일 그런 일로 인하여 걱정하며 밥도 안 먹고 다니다 집에 왔더니 어머니는 왜 어디 아프냐고 물으셨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은 못 드리고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걱정되셨는지 방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하시며 콩나물죽을 쒀 주신다고 했다.

 

  어머니가 해 주신 콩나물죽을 먹으니 기운을 차릴 수 있어서 비를 맞으며 밖에 나가 놀고 있는데 집에서 동생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웬일인가? 하여 집으로 뛰어갔더니 어떻게 아셨는지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 서 계셨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닌다면서 그날 아버지께 아마 내 기억으로는 마지막 매타작을 당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입이 싸기로 유명했던 사촌 동생 녀석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우리 아버지와 마주치니 내가 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전부 고자질했던 것이다. 나도 화가 나 그 녀석을 내가 맞은 것만큼 두들겨 패 주었고 그 일 후로는 동생 녀석을 다시는 믿지 않기로 했다.

 

  지금 사촌 동생도 나이가 벌써 57세로 인도네시아에서 운동화를 만들어 한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굳이 학력을 따지자면 초등학교 졸업장도 못 딴 녀석이 어렸을 때부터 보였던 장사 기질을 잘 발휘하고 있다.

  가끔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기만 했지 10년이 넘도록 보지 못한 사촌 동생이 아이스께끼의 추억을 생각하니 그 녀석이 보고 싶다.

 

  상용아, 잘 지내고 있니?

형이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네 생각이 나는구나.

건강하게 잘 지내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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