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여주

지슬의 세계 2018. 2. 9. 13:12

 

여주

 

  늦은 봄 집 창문 밑 작은 화단에 풀이 무성하던 것을 정리해 보니 꽃 묘목 몇 그루 심을만한 공간이 생겼다.

  마침 아내와 시간이 나서 남문 시장을 산책 겸 걸어 다니다 보니 여주 묘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내는 옛날 집안에 여주를 심어 늘어뜨린 것이 생각난다며 “여보 우리 저것 사다 심어요.” 한다. 철이 늦어서인지 묘목은 신청부같아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게 제값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집 화단에 심었던 기억이 있고 여주가 당뇨에도 천연인슐린이란 말을 들어 잘 키우면 어머니 약에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심기로 하고 세 그루를 사다 밑거름을 든든히 하고 심었다.

 

  매일 틈나는 대로 들여다봤지만, 열흘이 지나도 묘목은 뿌리 앓이를 하는지 배리배리한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보름이 지날 정도에 화단을 지나치다 보니 이제야 땅 냄새를 맡았는지 한 포기에서 새순이 올라오면서 넝쿨손을 내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창문틀에 줄을 얼기설기 매 놓고 줄기를 조심스레 옳아 매 놓고 날마다 살펴보니 묘목도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을 아는 듯 힘차게 순을 뻗어 나가고 있었다.

  아내는 퇴근 후에 살펴보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지마자 살펴보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드디어 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럴까 여주도 암컷 수컷이 있는 게 아닐까? 하며 생각하고 있던 차에 넝쿨 사이로 연필심만 하게 열매가 달려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재미있기도 해서 매일 쳐다보며 즐거움에 차 있을 때 어느덧 여주는 중간 오이만 하게 자라 있었다. 밤일만 하는 나는 시간 나는 대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약으로 쓸려면 완전히 여물지 않을 때 따서 말려야 한다고 하기에 퇴근해 있는 아내에게 “유주를 따는 영광을 주겠노라.” 하며 말했더니 커다란 것 세 개를 따서 썰어 채반에 올려놓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일하면서 사진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머니 약에 쓸 수 있다고 하니 더없이 좋았다. 매일 그렇게 바라보고 관찰하는 재미가 있을 때 넝쿨 사이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놈이 어느새 자라 노랗게 익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내년엔 씨를 심을 요량으로 어느새 잘 익어 벌어져 빨갛게 젤 같은 것에 덮여 있는 여주씨를 골라내 맛을 보니 옛날에 먹던 들큼한 맛은 나지 않았지만 좋은 추억을 더듬을 수 있었다.

몇 개 더 따서 잘 말려 어머님 약에 써 보자며 아내와 나는 오늘도 여주 넝쿨을 살펴보면서 혹시 거미줄에 걸려 나비와 벌이 오지 못할까 하여 시간 나는 대로 거미줄을 제거해 주고 있다.

 

  사람이란 참 묘한 데가 있다. 여주 넝쿨 하나에도 효도를 생각하며 정성을 들여가며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 사람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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