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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고사

지슬의 세계 2018. 2. 12. 12:06

 

 

가을 고사

 

  며칠 전 이웃에 집수리를 하는가보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드르륵 드르륵거리며 수면을 방해하던(나는 밤일을 주로 하기에 새벽에 들어와 잠을 자는 고로 다른 사람들의 아침은 나의 새벽 시간과 같다.) 집에서 이사하는지 사다리차가 와서 떠들썩하게 이삿짐을 나르더니 조용해졌다.

한 참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누가 왔는가 하여 문을 열어보니 젊은 새댁이 아기를 업고 옆집에 이사 왔다며 일회용 알루미늄 접시에 시루떡을 가져왔다. 이웃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자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며 웃는 모습이 아직 이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천진한 사람으로 보였다.

 

  어머니와 팥이 넉넉하게 들어간 시루떡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음력 10월이 되면 우리 집은 가을 고사를 지냈다. 아마 한해 농사를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여 감사한 마음을 담았으리라.

다른 집들은 형편에 따라 고사를 지낼 때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그냥 넘어갔지만 유독 우리 집만은 한해도 거른 적이 없었다. 아마 만신이셨던 우리 할머니의 신앙에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두 말이 넘게 들어가는 큰 시루에는 메떡을, 한 말 반들이 중간 시루에는 찰떡을, 또 한 말 정도 들어가는 작은 시루에는 고물을 얹지 않은 흰 시루떡을 할 정도로 큰 고사였다. 해마다 고사를 지내면서 안방이며 건넌방 사랑방 등, 방마다 떡과 막걸리를 부어 놓으시고 장독대며 헛간과 하다못해 화장실(변소)에도 떡과 막걸리를 갖다 놓고 할머니는 돌아다니시면서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비셨다.

 

  고사를 마치면 할머니는 동네 이웃사람들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며 어머니와 함께 떡을 네모 반듯하게 썰어서 접시에 담아 이웃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그때는 먹을 것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때이기에 우리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른들이 하시는 일에 감히 말도 못 꺼내고 할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우리 삼 형제는 이웃집에 갖다 주었는데 초등학교 5~6학년 때일 것이다. 그 해에는 사촌 동생들과 같이 떡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 헌데 우리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떡을 돌렸지만, 큰집 동생과 작은집 동생들은 맛있는 찰떡은 자기들이 게 눈 감추듯 집어 먹고 메떡만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엄두도 못 낸 일을 두 집 동생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었다. 참 별난 녀석이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그렇게 순진하게만 자랐던 우리는 그래도 각자가 가정을 잘 꾸리고 살고 있지만 약삭빠르게 그런 짓을 하던 사촌 동생들은 제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 교통사고로 죽은 녀석도 있고 나이가 56세가 되었어도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동생이 있는가 하면 또 가정을 꾸렸다고는 하지만 이혼과 재혼을 몇 번씩 한 동생들도 있다.

이 세상 꾀만 가지고 사는 세상은 아닌가 보다 우리 속담에 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저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산 게 복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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