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글

여보, 그래서 우린 부부인가 보오.

지슬의 세계 2018. 2. 12. 12:09

여보, 그래서 우린 부부인가 보오.

 

  해마다 12월이 되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택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12월 24일.

그날은 날이 날인만큼 수입이 좋은 날이 되어서 예비 기사들에게는 차가 배차되지 않았다.

두 시간여를 기다리다 배차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집으로 들어와 업무에 시달려 곤히 자는 아내 깰세라 조심조심 잠자리에 들어 막 잠을 자려는데 갑자기 아랫배에서 툭 하는 느낌이 들더니 참지 못할 고통이 스며들었다. 웬만한 고통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는 성격인지라 아내가 깰까 봐 뒤척이며 참고 있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내를 깨웠다

 

  잠이 깬 아내는 방안의 불을 켜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얼마나 아프기에 이렇게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느냐며 그럼 진작 깨우지 그랬냐고 핀잔을 주었다

참다못해 119구급대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차가 얼마나 심하게 요동치는지 약 이십 분 가는 거리에서도 멀미로 인해 먹었던 것을 다 토하고 나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하여 식은땀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데도 병원 측에서는 병명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진통제 하나 처방해 주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두 시간 정도의 검사결과 요로결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아내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의사에게 병명이 나왔으니 진통제라도 처방해 달라고 하자 간호사는 캐러멜같이 생긴 것을 손톱만큼 가져다가 혀 밑에 넣고 녹여 침을 삼키라 하였다

 

  달착지근한 침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통은 사라지고 힘들고 지친 몸은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약이 몰핀이라는 마약 종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큼 잤는지 잠결에 성경 구절이 생각이 났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잠이 든 남편의 머리맡에 눈을 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어렴풋이 들어 왔다. 기도하는지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119구급차를 타고 가면서도 손 꼭 잡고 기도하던 당신.

치과에 근무하며 온종일 업무에 시달려 피곤한 몸이지만 잠을 쫓아가며 병원 간이침대를 떠나지 못하고 자릴 지키고 있던 당신의 모습.

 

  눈을 뜬 나는 아내에게 물어봤다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아내 대답하기를 무슨 기도겠어요 당신 아무 일 없이 일어나기를 기도했지요. 그리고 성경 구절을 암송했어요.

내가 깨어날 때 외웠던 구절과 같은 성경을 암송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심전심이라고 하는가?

나는 아내의 손을 힘껏 잡고 속삭였다. 여보, 그래서 우린 부부인가 보오.

 


'스크랩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릴케=  (0) 2018.02.12
장가 잘 간 놈  (0) 2018.02.12
사이코패스   (0) 2018.02.12
가을 고사  (0) 2018.02.12
"UBUNTU"  (0) 2018.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