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화답사

중초사지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지슬의 세계 2018. 9. 10. 03:53

안양 석수동 마애종을 너무 쉽게 찾아 기분이 좋았다. 삼층석탑과 당간지주를 찾으려 주변을 둘러 보다 지나가는 스님이 있어 길을 물어 보았으나 동네 사람이 아닌지 우물쭈물 하고 있던차 지나가는 중년의 남자가 자기가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알려 줄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이곳 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던지 안양박물관과 건축가 김중업에 대해 자서히 설명해 주었다.

안양 석수동 안양박물관 입구에 있는 중초사지 삼층석탑(安養 中初寺址 三層石塔)은 경기도 안양시 중초사지에 있던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초사터에 남아 있는 탑인데, 지금 자리가 원래의 자리는 아니고 1960년 옛 터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공장 입구,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보물 제4인 당간지주와 함께 서 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1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부는 2·3층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3개 포개져 있다. 기단과 1층 몸돌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이 매우 두꺼워 급한 경사를 이루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밑면 받침 1·2층은 4, 3층은 3단을 두었으며 간략화 되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가 너무 크고, 탑신의 1층 몸돌이 그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불안정한 모습이다. 1층 기단이라는 특이한 점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판의 설명과 표지석의 표기가 다르게되어 있다. 이상하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1963121보물 5호로 지정되었다가 예술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여 1997년 12월 26일 보물에서 유형문화재 제164호로 바뀌었다. 그런대도 비석은 아직 바꾸지 않아 혼돈을 일으킬수 있게 한다.

안양 석수동에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는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중초사지에 있다. 19631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지주가 원래 모습대로 85간격을 두고 동서로 서 있다.

이곳을 중초사터라고 하는 것은 서쪽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기록에 따른 것이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지주 사이와 양쪽 지주의 바깥에 하나씩 총 3장을 깔아서 바닥돌로 삼고 있는데, 이 역시도 원래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구멍을 각각 지주의 상··하 세 곳에 뚫었다. 각 부분에 섬세하게 조각을 해두지는 않았어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순한 기둥이려니 생각했더니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명문은 모두 6123자로 해서체로 쓰여졌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시 가서 확인해야할 숙제가 생겼다.

이 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826) 86일에 돌을 골라서 8272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희귀한 예로, 만든 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드디어 숙제를 했다. 마침 안양에서 임마누엘 전국 체육대회가 있어서 잠시 짬을 내어 다녀 왔다. 명문에 글씨가 새겨졌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판독은 어려울 것 같이 마모가 심함을 한눈으로 알 수 있다.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는 받침은 지주 사이에 돌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지름 36의 둥그런 구멍을 뚫어서 마련하였다. 양쪽 지주에 장식적인 꾸밈이 없으며,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흔적이 있어 시대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쪽 지주의 윗부분이 깨어져 있는데, 8·15해방 후 인근의 석수(石手)들이 석재로 반출하기 위한 자취라고 전해진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