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효원공원을 찾아 구경도하고 사진도 찍었지만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지 못하여 혼자서 효원공원을 찾았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간간히 직장인들이 산책 겸 휴식을 취하려 거닐고 있는 정도였다.
주로 월화원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토피어리원이라는 돌비가 눈에 들어 왔다.
토피어리? 토피어리란 무엇일까?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보니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조경 작품을 이야기 한다.
친구가 조경업을 하고 있어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향나무와 측백나무를 전지하며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았었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토피어리란다.
잎이 두꺼운 상록관목에 자주 쓰이며 가장 좋은 나무는 회양목속·사이프러스·주목(朱木) 등이다. 그밖에 로즈메리·감탕나무 등도 좋다.
토피어리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한 친구가 발명했다고 하며 1세기부터 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한 초기의 참고자료는 없으나 나무를 손질하고, 가지를 치고, 다듬는 방법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오랜 시기에 걸쳐 그 기술이 발달해온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토피어리는 키 작은 회양목의 가장자리를 단순하게 손질하는 것이었다고 추측되며, 이후 원뿔형·원주형·나선형 등으로 회양목을 다듬어 정원 조경에 특색을 부여했던 것 같다.
이 건축적인 형태는 곧 정교한 구상주의에 밀려나 배·사냥꾼·사냥개 등의 모습으로 관목을 손질하게 되었다.
18세기에 토피어리는 '나무 이발술'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나 정작 이 기술을 지닌 정원사들은 나무 석공술 또는 관엽 조각술이라고 불렀다.
항상 한정된 지역에서만 시행되었는데, 돌로 만든 조각이 너무 싼 곳이나 너무 비싸 구할 수 없던 곳에서 쓰였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보기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귀족의 정원이 아닌 영국·네덜란드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토피어리에 적당한 식물들이 무성한 반면 석재가공품은 값이 비쌌다.
영국에서는 17세기말과 18세기 초에 토피어리 유행이 절정에 이르렀으나 이른바 자연식 정원(→ 자르뎅 앙글레)이 등장함에 따라 쇠퇴했다.
토피어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몇 세기를 거쳐 온 토피어리 정원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전통적인 토피어리 정원에는 새로운 나무들이 심어졌다.
이것은 코끼리란다.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그런데 이런 것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악어같이 생기긴 했다. 참 대단한 정성이다. 향나무 한 그루를 키워 자르고 유인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쉽진 않을탠데~~
작품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어떤 것은 그럴듯 하지만 어떤 것은 그렇다니까 그렇게 보인다.ㅎㅎㅎㅎ
꿩이나 학이나 생긴건 비슷하다. 그래도 한쌍의 학이라니까 그렇게 믿어주자.
'수원의 이곳저곳 역사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홍관창 (0) | 2020.12.26 |
---|---|
방화수류정의 설경 (0) | 2020.12.13 |
수원 광교호수공원 반영 (0) | 2018.09.30 |
서북공심돈의 반영 (0) | 2018.08.29 |
장안문에서 방화수류정까지 (0) | 2018.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