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화답사

강경의 근대 문화유산

지슬의 세계 2018. 10. 15. 03:33

이번 강경 여행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 같다.

첫 번째는 순교자 기념비와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킨 선조들의 믿음을 다시 보게 된 것과 아울러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 기행을 했다는 것이다.

강경하면 우선 떠 오르는 것이 젓갈이 전부였는데 막상 강경을 둘러 보니 근대 역사를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무심코 봤을땐 그저 국적없이 지어진 기와집 같았었는데 집 주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근대문화유산이었다.

사실 요즘 지방에 많이 건축하고 있는 기와집은 우리나라 전통의 기와집이라기 보다 일복 색을 많이 띄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기와집은 처마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특색이라 할 수 있는데 일본식 기와집은 그저 단순하게 일자로 지어졌다고 하겠다.

연수당 건재 약방의 건물을 보더라도 처마가 한 一자 형태로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강경은 지금 변신중이다. 군데군데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꾸미는 것이 보였다.

근대문화코스도 새로이  단장하고 있다.

근대 역사적 사료들을 잘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의 모습이다. 그래도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안내판을 세워 놓기는 했는데 너무 낡았다.

은행 앞에  산뜻하게 표지판을 만들어 세우기는 했는데 무단주차로 인하여 표지판을 한꺼번에 담지 못했다

기왕에 홍보하려고 세워 놨으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주변도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은 은행 건물을 강경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은행 뒷편을 돌아가 보니 새로이 건축된 건물들이 여러동 있었다. 아직까지 무슨 건물인지 안내판이없어 알 수는 없지만 옛날 모습을 갖춘 것 같다.

건축중이라 아직 주변이 정리가 안돼있었다.

이런 건물들이 복원되면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고풍스런 멋을 맛 볼 수 있다.


1920년대 당시 내륙지방으로서의 수산물 유통은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규모와 세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 당시 노동자의 임금이 3일을 일해야 쌀 한 됫박씩을 받았는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하루에 쌀 한 되씩을 받았다고 하니 그 위력이 대단했었나 보다.

강경노동조합 건물의 안내판도 언제 만들어 세웠는지 글씨가 흐릿하여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옛날 모습을 재현하려 했는지 강경엔 유난히 전깃줄이 많이 늘어져 있었다.

덕유정이란 안내판을 새로 만들어 세웠나 보다 한눈에 보아도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

향토유적 제1호라고 적혀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유적이라 할만한 곳이 못되었다.

저 대청마루에서 활을 쏘는 것 같다. 표적은 울타리 밖에 설치되어 있다.

적어도 향토유적이라 하면 유적다운 기풍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건물 뒷편은 그런대로 옛 모습을 느낄 수 있었으나 처마밑에 설치되어 있는 물받이가 좌우로 있어 눈에 많이 거슬렸다.

한때 강경엔 인구 10만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9천명 정도 살고 있어서 인지 군데군데 허물어진 건물들이 보였다. 저 허물어진 건물도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을 텐데~~~

꽤나 오래됬을 것 같다.

산뜻하게 정돈된 거리에도 전깃줄이 난무하다.

갤러리에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업다.



강경하면 떠 오르는 젓갈을 판매하는 집들이 다른 젓갈시장과는 규모가 천양지 차이를 보았다. 관광객들이 차로 몰려오면 한꺼번에 한자리에서 해결할 정도였으니~~~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 그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




처마를 바치고 있는 장식들이 정겨워 보였다 옛날 내가 살던 집에도 저런 것들이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방앗간으로 사용했던 것 같은데 아무 안내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