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놀이
지슬 박경남
깡통도 흔치 않았던 어린 시절
설 명절의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우리는 쥐불놀이할 깡통을 주우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퀭한 눈에 코끝 까매져 돌아오면
어머니는 점심도 안 먹고 어딜 그리 쏘다니다
이제 들어오느냐 시며 야단을 치시면
우리는 깡통 못 주어온 화풀이를
어머니께 해대곤 하였다.
그 기분을 아시는지 아버지는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 주시며
얼른 씻으라 하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시고 우리를 바라보셨다.
비누칠 하여 뽀드득 소리 날 정도로
깨끗이 씻은 얼굴을 보시며
아버지는 마루 밑에서 우리 삼 형제만큼의
깡통을 꺼내시어 커다란 대못으로
듬성듬성 구멍을 뚫으시고
정성껏 철삿줄을 매어주시며
돌려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자식들 놀이하라고
먼 길 다녀오시다가 깡통을 주워 오신 것이다.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 준비가 끝났다.
이제 얼른 자고 내일 갖고 놀라는
아버지 말씀에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우리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삼 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살그머니 일어나 내복 바람으로
밖으로 나가 빈 깡통을 돌려본다.
내일이면 우리는 동네의 주인공처럼
쥐불놀이 깡통을 돌리며 즐거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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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 후면 정월 대보름이다.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절이 되었지만
옛날엔 대보름까지를 설 명절로 생각해서
대보름이 지나야 설을 다 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난다.
쥐불놀이 깡통을 만들어 주시던
자상하신 아버지.
아버지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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