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쥐불놀이

지슬의 세계 2018. 2. 10. 01:30

 

쥐불놀이

 

지슬 박경남

 

깡통도 흔치 않았던 어린 시절

 

설 명절의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우리는 쥐불놀이할 깡통을 주우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퀭한 눈에 코끝 까매져 돌아오면

어머니는 점심도 안 먹고 어딜 그리 쏘다니다

이제 들어오느냐 시며 야단을 치시면

우리는 깡통 못 주어온 화풀이를

어머니께 해대곤 하였다.

그 기분을 아시는지 아버지는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 주시며

얼른 씻으라 하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시고 우리를 바라보셨다.

 

비누칠 하여 뽀드득 소리 날 정도로

깨끗이 씻은 얼굴을 보시며

아버지는 마루 밑에서 우리 삼 형제만큼의

깡통을 꺼내시어 커다란 대못으로

듬성듬성 구멍을 뚫으시고

정성껏 철삿줄을 매어주시며

돌려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자식들 놀이하라고

먼 길 다녀오시다가 깡통을 주워 오신 것이다.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 준비가 끝났다.

 

이제 얼른 자고 내일 갖고 놀라는

아버지 말씀에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우리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삼 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살그머니 일어나 내복 바람으로

밖으로 나가 빈 깡통을 돌려본다.

내일이면 우리는 동네의 주인공처럼

쥐불놀이 깡통을 돌리며 즐거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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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 후면 정월 대보름이다.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절이 되었지만

옛날엔 대보름까지를 설 명절로 생각해서

대보름이 지나야 설을 다 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난다.

쥐불놀이 깡통을 만들어 주시던

자상하신 아버지.

아버지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