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명절 때면 생각나는 추억

지슬의 세계 2018. 2. 10. 01:34

명절 때면 생각나는 추억

 

지슬 박경남

 

  잔정이 많으셨던 아버님은 동네 궃은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 그냥 넘어가시는 일이 없으셨다. 특히 가정에 장애가 있으시거나 혼자 사시는 분들의 경우 우리 아버님의 도움을 안 받으신 분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네 일을 돌보셨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관계로 인해 어머님의 속을 태운 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분들이 아버님을 오라버니라 부르시며 따르셨기에 우리 형제들은 자연 고모님이 많았다.

 

  사람이 몸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다른 분들은 자연 소원해지셨지만, 그중에 유독 아버님을 따르던 한 분이 계셨는데, 그 고모님은 아버님 돌아가신 후에도 유대 관계는 지속하였다. 어머님보다도 나이는 몇 살 더 위셨지만, 아버님을 오라버니로 모셨으니 당연히 새언니가 되어야 한다며 어머님께 형님이라고 깍듯이 대하곤 하셨다.

  고모님은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와 마치 당신의 일 인양 기쁜 일이면 누구보다 기뻐해 주시고 슬픈 일이면 남들보다 더 슬픔을 나누어 주셨기에 우리 형제들은 많이 따르고 그 분 자제들과도 형제 이상으로 친하게 지냈다.

 

  고모님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모부님도 폐결핵으로 오래 앓으시다 돌아가셨기에 일가친척이라곤 거의 없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정에 목마르셨는지 명절 때만 되면 우리 집에 오셔서 친 고모님 이상으로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고 놀이도 함께하시며 웃으시고 한이불을 덮고 주무시면서 밤새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시곤 하셨다.

  입이 짧으신 고모님은 입맛 없으시다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시다가도 우리 집에만 오시면 어머님께 큰 양푼을 달라시며 “어이 조카님들 공구리 어때?” 하시고 양푼에다 명절 때 준비한 반찬과 밥을 쏟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 한 숟가락 넣으시고 기운차게 비벼내신다. 우리 삼 형제들은 서로 머리를 디밀어가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는 욕심에 양푼을 끓어 안고 싸움 반 장난 반으로 그 많은 밥을 뚝딱 해치운다. 입맛 없다 하시던 고모님도 덩달아 한 사발 퍼서 드시면서 “우리 조카님들 자시는 걸 보니 내 입맛이 돌아왔어.” 하시며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신다.

 

  몇 해 전 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님을 모시고 장례식장엘 들어섰다. 그쪽 형제들이 우리 어머님을 붙들고 “삼촌 엄마,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삼촌 엄마는 우리 효도까지 받으시며 오래 사셔야 한다.”며 통곡하는 정을 나누었다.

 

  이웃사촌이라고 하는 말이 이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명절 때만 되면 그리운 이웃과 정이 생각난다. 이제는 먹어 볼 수 없는 고모님이 비벼주셨던 참기름 냄새가 고소한 비빔밥, 우리 형제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올해 설날에도 생각하며 아버님의 선행을 본받는 자식들이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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