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이곳저곳 역사탐방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지슬의 세계 2018. 3. 14. 13:05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장안공원의 사진은 많이 찍어 봤지만 좋은 사진을 얻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좋은 사진은 못얻었지만 그래도 한번 올려 보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였다면 더 멋진 모습이었을텐데 미세먼지가 많아 그리 멋진 모습은 아니어도 좋기만 하다.

화서문에대한 설명이 잘되 있어서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듯하다.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1795(정조 19) 7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정조 20) 18일 완성하였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옹성으로 가려진 화서문이 견고하게 보인다.

밖에선 본 서북공심돈

정조 21(1797) 1.29일 화성을 순행하였으며, 화서루(華西樓)를 지나 공심돈에 이르러 각신(閣臣)에게 "공심돈은 우리 동국의 성제(城制)에서는 처음 있는 것이다. 여러 신하들은 마음껏 구경하라(至空心墩, 謂閣臣承旨曰: 心墩, 卽我東城制之初有者. 諸臣可縱觀之.)"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최근의 수리는 1975년과 1993년에 유지 보존을 위한 부분적인 수리가 있었다.




초대 화성 유수였던 체제공이 썼다는 편액이다.

사각형모양으로 반듯한 큰 돌 지금 보아도 어마어마한 돌이다. 사람들의 힘만으로 쌓았다면 그리 쉽게 쌓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내부 천정 모습이 웅장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보행자 통로를 데크로 만들어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언제 보아도 멋스러움과 웅장함을 보인다.

성안에서 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저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만 없었다면 더 멋진 풍경이었을텐데~~

홍에문 안은 노인들의 편안한 쉼터이다.

명성만큼이나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 주변의 잔디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서는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있다.

글씨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성안엔 요즘 한옥들을 많이 짓고 있다. 앞으로도 성내엔 많은 한옥들이 들어성다고 한자.

서북공심돈 주변을 날아다니는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

평화의 상징이라고는 하나 문화재에는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수원시의 마크는 수원화성의 문을 간결하게 형상화한 것인데 바로 화서문을 모델로 한 것이다.

서북각루가 소나무와 잘 어우러졌다.

북포루 넘어 장안문이 보인다. 언제부터인지 미세먼지가 사진찍기에 방해가 됬는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