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북문 밖 공설운동장 북쪽에 위치하며, 수원 지방에서는 조기정방죽, 일왕저수지, 북지라고도 불린다.
1795년(정조 19) 정조 때 축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길이는 387m, 높이는 4.8m, 저수면적은 24.7m, 혜택면적은 82.2m, 평균수심은 1.8m이다.
정조는 수원성을 축성하면서 수원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호수를 파고 방죽을 축조하였는데, 북쪽에 판 것이 만석거(萬石渠)이다.
1794년(정조 18)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정조는 화성 공사를 중지하고 가뭄에 대비한 구휼대책과 농가의 이로움, 수원화성 운영 재원마련을 위해 만석거를 조성하였다.
만석거는 당대 최신식 수문과 수갑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모인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인 대유둔[北屯]을 설치하여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했다.
저수지 가운데는 작은 섬을 두어 꽃과 나무를 조화롭게 심었고 호수에는 연꽃을 심었다.
한편 동쪽, 지금의 수원시 지동에 축조한 것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798년(정조 22) 남쪽에 축조한 것이 사도세자 묘역인 화산(花山) 현륭원(顯隆園) 앞의 만년제(萬年堤)이고, 1799년(정조 23) 서쪽에 축조한 것이 수원시 서둔동의 축만제(祝萬堤, 西湖)이다.
만석거는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중요하게 사용되었고, 주변 경관 또한 아름다워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풍경은 ‘석거황운’(石渠黃雲)이라 하여 수원 추팔경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이들 저수지들은 수원성[華城]을 수축하면서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게 되자 사관병졸들의 급료나 기타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한 화성둔전(華城屯田)에 물을 대려고 판 것이었다.
만석거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0월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제68차 집행위원회 제68차 집행위원회에서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옛날에 세워져 있던 영화정지 안내판이다.
영화정지 원래 비석은 분실되어 없어지고 새로운 비석으로 대치되었다.
호수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는 영화정(榮華亭)을 세워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고적으로 관리되어 있으면서도 관리가 안되었는지 문짝 하나가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또 한쪽은 신방으로 착각했는지 창호지에 난 구멍이 눈살을 찌프리게 했다.
여의루라는 현판은 있으나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세워졌는지 안내판 하나 없다.
어떤 철부지들이겠지만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북지상련에대한 해설비가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설면문에 있는 교구정으로 사용되었던 진목정은 자취를 찾아볼 수없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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