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미꾸라지탕
몇 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으시고서도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시던 어머님이 무엇을 잘 못 드셨는지 한번 배탈이 나신 이후론 완전히 식욕을 잃으셨다.
아내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지 이것저것 여쭤보며 사다 드린다고 해도 별로 달갑지 않은 듯 대답이 시원치 않으신 어머니는 이렇다가 좋아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 하시지만, 아내는 어머님이 무엇을 잘 드셨는가를 골몰히 생각하더니 퇴근길에 미꾸라지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신 어머니는 궁금하신지 열어 보시더니 반색을 하시며 그래 이것을 먹으면 식욕이 돌아올 것 같구나 하시며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
왕소금을 쳐서 미꾸라지를 잡고 깨끗하게 씻어서 커다란 들통에 앉히고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어 끊이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
부그르르 끊는 통 미꾸라지탕을 드시는 어머님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셨고 땀방울 속에 아련한 추억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철엽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아버님은 가는 철망으로 튼튼하게 솜씨 좋게 삼태기를 만들어 놓으시고는 가끔 철엽 국이 생각나시면 동네 어른들과 개울가로 나가셔서 철엽 국을 끓여 드셨다. 매번 어머님이 갖은 양념과 매운탕거리를 준비해서 드리면 아버님은 고추장만 찾아서 달랑 그것 하나만 들고 나가셨다. 어머니는 왜 다른 채소들은 가져가지 않으시냐고 물으시면 가다가 작은집에서 따 가면 된다고 하셔서 그때까지도 어머님은 작은 집에서 호박이며 고추, 깻잎 등 채소를 따서 끓여 드시는 줄만 아셨다고 하셨다.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그때는 서로 인심도 좋고 다 아는 처지이고 남의 것 내 것을 그리 구분하지 않았던 때라 지나가던 길에 이웃집 밭에서 파를 뽑고 호박을 따고 고추를 따서 철엽 국에 넣어 끓여 드셨던 것이다.
집에서는 생전 그런 일을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아버님이 철엽을 나가시기만 하시면 손수 씻고 닦고 하시고 돌멩이들을 모아다가 간이 화덕을 만들어 주변에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아 불을 지피고 커다란 양은 솥을 걸어 통 미꾸라지탕을 끓이셨다.
그때 그 맛이란 셋이 먹다 둘이 업혀가도 모를 정도로 세상에 어떤 진미보다 더 맛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머님도 그때 몇 번 아버님을 쫓아다니시면서 맛을 본 기억이 있으셔서 집에서 끓여드리면 이상하게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 시며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아버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언제 날 잡아 철엽한번 가시자며 즐거워하셨다.
지금은 갈 수도 없는 고향, 아니 가봤자 자취도 찾을 수 없는 콘크리트 더미 속의 세상으로 변해버린 마음에만 남아 있는 고향의 정취.
어디에서 돌을 주워 모아 아궁이를 만들고 삼태기로 고기를 잡아 끓여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을 또 해 볼 수 있을는지.
그래도 추억 속에서나마 기억해 보는 아련한 그리움
아들들은 통으로 끓인 미꾸라지를 보고는 징그럽다며 안 먹고 내빼지만,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나는 맛으로 먹고 추억으로 먹는다.
어머니 이젠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우리 옛이야기 하며 즐겁게 살아요.
효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