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망할 놈의 세상!
택시 영업이 손님만 많이 있다면 이것처럼 재미있는 직업도 없을 거란 생각을 한다. 특히, 나같이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딱 맞는 직업이리라.
요즘엔 손님이 너무 없어 합승이라는 것을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없지만, 손님이 많을 때는 여러 명이 함께 서 있는 곳에서는 안태우고 무사통과 했다. 그러기에 그 손님들도 꾀를 낸 것이 다른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인 척하며 딴청을 부리다가 한사람이 택시를 잡고 문을 열면 우르르 몰려와 타는 수법을 곧잘 사용한다. 그러면 안태울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 로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린다.
지금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손님이 없으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장난으로 손을 들면 어느새 택시가 앞에 정차하는 실정이다.
한사람 손님을 내려드리고 다른 손님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데,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택시를 잡는다. 할머니 앞에 차를 대니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까스로 차 문을 열더니 “죄송해요”를 연발하면 간신히 차에 몸을 싣는다. “할머니 천천히 타셔도 되니까 염려하시지 마시고 안전하게 타세요.” 하며 안심 시켜드리지만, 할머니는 말을 안 듣는 몸을 원망하며 겨우 몸을 차에 구겨 넣으셨다. 목적지를 여쭤보고 차를 몰면서 말을 걸어보니 할머니라고 하기엔 젊으신 분인데 중풍을 맞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다. 어쩌다가 몸이 그렇게 됐느냐고 여쭤보니 한숨을 길게 내 쉬시며 눈에는 금세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고인다. 한참을 그렇게 계시더니 말문을 여신다.
삼 형제를 두신 할머니는 큰아들이 일찍 결혼하여 손주 하나를 낳고 살림을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육촌 오빠라는 사람이 아들이 출근하기 바쁘게 집으로 들어와 해가 질 때까지 집에 있으면서 며느리도 같이 한방에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육촌 오빠라고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남녀가 한방에 오래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있던 터에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은 육촌남매끼리 무슨 일이 있겠느냐며 괜히 애먼 사람 의심하시지 말고 편하게 계시라고 어머니를 설득하더란다. 아들이 그러는데 어머니는 우길 수 없는 일이라 그렇게 있었는데 육촌 오빠라는 사람의 출입이 점점 더 잦아지더니 함께 나돌아 다니다 아들이 퇴근해서 올 시간이면 허겁지겁 들어와 살림하는 척을 하는 게 영 미심쩍어 다시 아들에게 이야기해 보았지만, 아들은 어머니만 나무란 채 꽤 긴 세월이 흘러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아들은 이상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며느리와 언쟁을 시작했단다. 아들은 어머니가 혼자 일찍 되셔서 삼 형제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자기는 결혼을 하면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겠다고 결심을 하고 결혼 후 아들 하나를 보고서는 며느리도 모르게 정관 수술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며느리가 임신을 했으니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아들은 며느리에게 여태껏 있었던 일은 다 덮어 줄 테니 그 남자와 정리를 하고 가정에 충실하기를 원했지만, 며느리는 적반하장으로 억울한 사람 의심해서 화냥년을 만드느냐고 길길이 뛰기에 그럼 육촌 오빠를 만나게 해 달라는 말에 왜 남의 육촌 오빠를 당신이 만나려고 하느냐고 도리어 큰소리치더란다. 하는 수 없이 아들은 자기는 첫 애를 낳고 정관 수술을 해서 더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더니만 며느리는 자기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병원엘 가서 확인까지 하고 와서도 자기는 억울한 사람이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치더니만 며칠 후 집안에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했다. 그 바람에 할머니는 충격을 받아 쓰러졌고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약을 먹었다가 죽지도 못하고 병신만 되었다고 눈물지었다.
세상이 도대체 어찌 되려고 이런 일이 집안에서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살림하는 여자가 바람이 나서 나가 돌아다닐 수는 있겠지만, 남자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놀아나다가 임신까지 하고서도 조용히 해결하려는 남편의 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확인까지 하고서야 들통이 나니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달아나 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참 세상도 이런 망할 세상이 어찌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할머니의 하소연을 듣느라고 다 왔다고 내리시란 말도 못하고 있다가 할머니의 한숨 섞인 눈물만 내 가슴에 쌓아놓고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질질 끌고 사라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뿌연 안개가 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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