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문화답사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그리고 대(臺)

지슬의 세계 2018. 5. 8. 03:58

누각(樓閣)정자(亭子) 그리고 대()

 

누각과 정자의 차이는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벽을 없앤 1층짜리 건물이고 2층짜리 건물이 누각이다. 그런데 1층이냐 2층이냐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전통 건물의 경우 통풍을 위해 지면에서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한 후 짓는 게 보통이다. 당연히 정자 역시 땅에 붙여 명명 백백 1층임이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누정을 구분할 때 보통 사람의 키보다 높으면 2층으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1층으로 본다.

 

누각과 정자의 또 다른 차이는 규모이다. 보통 정자보다 누각의 규모가 크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 정자가 혼자 관람용 건물이라면 누각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건물이라 보면 된다. 따라서 산속 오지에 오두막 하나 짓고 세상과 떨어져 사는 사람이 누각을 지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산속 깊숙이 있는 누정은 대개 정자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누각이나 정자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한자로 된 단어는 보통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구체적인 사물을 뜻하든 혹은 추상적인 개념어이든 대개 그렇다. 누정의 경우도 그냥 루(), ()이라 불렀지 누각이나 정자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다. 두 글자 이상이 모여 한 단어가 되는 건 근대 이후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시작된 습관이다. 번역된 단어에 익숙하다 보니 멀쩡히 사용하던 단어도 두 글자로 변신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한 글자로도 충분히 뜻을 나타낼 수 있는데 굳이 한 글자를 더 붙이려니 사단이 난다. 그 전까지는 질서 있게 사용되던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이게 된 것! 정자의 자()는 별 뜻 없이 붙인 것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누각의 각()자는 어엿한 건물 명칭이므로 마찬가지로 건물 명칭으로 쓰이는 루()자와 마구잡이로 붙여 쓸 수 없다. 누각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1층과 2층이 함께 있는 복층건물이어야 한다. 복층 건물의 1층을 가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2층만 덩그러니 있고 1층에는 루를 지탱하는 다리만 있다면 각()이 없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건 누각이 아니라 그냥 루()이다.

 

마지막으로 누정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그건 대()라고 하는 건물인데 여름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경포대나 문무대왕릉을 바라다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는 이견대의 자가 바로 문제의 건물인 대()이다. ()라는 건축물도 얼핏 보기에 누정과 비슷하게 생겼다.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용도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왜 루()나 정()대신 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허투루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라는 것은 건물 이름이기 이전에 높고 두드러진 평평한 땅을 가리킨다. 멀리서 쳐들어오는 적을 살피기 위해서는 높은 땅에 서서 적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그것이 내부의 적이든 외부의 적이든, 그래서 해안가든 산악지대든 주변보다 높은 지대에는 항상 방위를 위한 초소가 마련된다. 그건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런 용도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물론 이견대의 경우 신문왕이 문무왕의 해중릉인 대왕암을 바라보기 위해지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지나 문무왕의 해중릉을 본다는 말은 실상 왜구의 동향을 감시하겠다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문무왕의 해중릉인 대왕암 자체가 죽은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바다용이 되겠다는 문무왕의 의지를 상징화 하여 이름붙인 것이지 실제 문무왕의 능은 아니기 때문이다.

 

()와 정()과 대(). 다 이유가 있어 붙여진 이름들이다. 함부로 판단하고 부르지 말자.



출처 : 낭만파리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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