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에 신사는 약 8만 5천개가 있다고 한다. 그 신사에서 모시는 주인공 대부분이 마한, 진한, 변한, 상고구려,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고려, 조선에서 건너가서 一家를 이룬 씨족의 창시자로 일본 전역의 약 90%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조상이라고 보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와타즈미신사는 일본 초대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의 할머니가 되는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姫命)를 바다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용왕신사이다. 신사와 도리이의 방향이, 가야 또는 신라를 향하여 세워져있다. 직선으로 선을 그어 보면 통영이나 거제도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일본인의 뿌리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도해궁(渡海宮)으로 도래설의 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하다.
본전 앞에 늘어진 줄을 당겨 위에 있는 종을 울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고 한다.
신사의 신화는 신들의 후견인인 ‘다카미무스비(高皇産靈, 高御魂)’의 외증손으로 지상에 강림한 ‘니니기(彌微藝)’의 아들 ‘히코호호테미노코토’가 어느 날 바다에서 낚시를 하다가 형의 낚시 바늘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신사의 내부를 들여다 봤다.
낚시 바늘을 찾기 위해 헤매다 신의 도움으로 용왕의 딸 도요다마히메노미코토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결혼한 후 3년 뒤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형의 낚시 바늘이 생각나서 용왕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바늘을 찾은 후에 하늘의 형에게 돌아갔다.
만삭의 몸으로 홀로 남은 공주는 바다 속에서 아기를 혼자서 낳을 수가 없어 풍랑이 심한 어느 날 출산을 위해 여동생 ‘다마요리노히메미코토(玉依女神)’공주를 데리고 와타즈미신사로 나왔는데, 여기서 남편을 다시 만난다.
공주는 손수 해변에 산옥(産屋)을 짓고 아기를 낳는 동안 남편에게 절대 산옥의 방안을 들여다보지 말라 당부하고 아기를 낳으러 들어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방에서 나오질 않고 아기 울음소리만 들려서 남편은 문틈으로 아내가 출산하는 장면을 봤더니 공주는 온데간데없고 큰 뱀(상어 혹은 이무기)이 괴로워 나뒹구는 모습만 보였단다.
남편에게 진짜 모습을 들켜 화난 공주는 낳은 아기를 바다에 버리고 용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때 버려진 남자 아이가 ‘우가야후기아에즈(鵜芽葺不合)’로, 별명이 ‘이소라에비스(磯良惠比順)’이다. 훗날 이소라에비스는 이모인 다마요리노히메미코토(玉依女神)공주와 결혼하여 일본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을 낳았다.
이 전설에 따라 지금 일본 황실계보는 천신(天神) 아버지와 해신(海神) 어머니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무라이(侍) 무인(武人)출신의 진무천황(神武天皇)으로 이어진다는 기원설화이다. 이 일이 기원이되어 일본에서는 사촌혼이나 인척혼이 전파되었다고 한다.
바다의 신을 모신 해궁으로 용궁전설이 남겨져 있는 곳이다. 본전 정면의 다섯 개의 ‘도리이(鳥井, 門)’중 바다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도리이는 만조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어 매우 신비롭다.
에보시다케전망대(烏帽子岳展望所)를 보고 내려 오면서 먼저 숲길을 통해서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로 들어가는 코스를 가이드로부터 안내받았다. 하늘 향해 쭉쭉뻗은 삼나무와 전나무의 울창한 모습 보며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전 뒤편에 있는 숲으로 가서, 바다의 신인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姫命)’의 무덤을 보았다. 언제 봐도 음침한 곳이다. 거대한 삼나무 아래에 있는 돌무덤으로 음기가 넘치는 것 같은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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